[1~2월 강의질문] 아리스토 텔레스에 대한 질문입니다.
- 작성자
- 김병찬
- 등록일
- 2016년 07월 13일 16시 23분
- 조회수
- 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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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감사합니다.
신실한 합리적 선택과 그렇지 않은 합리적 선택을 구분하셔야 합니다. 어떤 목적을 설정하고 그것을 성취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수단을 숙고하여 잘 선택한다면 그는 합리적 선택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합리적 선택이 신실한 혹은 올바른 합리적 선택이 되기 위해서는 설정된 목적이 올바른 것이어야 하고, 숙고가 참이어야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무절제한 사람의 무절제한 행위는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 합리적 선택의 결과물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쾌락의 추구를 목적으로 하여, 그것을 가장 잘 성취할 수 있는 수단을 합리적으로 선택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무절제한 사람의 합리적 선택은 신실한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목적 성취를 위한 수단의 선택이 참이라 할지라도, 목적 자체가 올바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절제한 사람과 자제력 없는 사람 사이의 차이가 합리적 선택의 소유 여부라고 할 때, 합리적 선택은 신실한 합리적 선택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절제한 사람과는 달리 자제력 없는 사람은 인간이 마땅히 목적으로 추구해야만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러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최선의 수단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제력 없음은 무절제와 유사하나 둘은 같은 것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남은 문제는 자제력 없는 사람과 덕 있는 사람의 차이입니다. 신실한 합리적 선택을 소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둘은 같은 사람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둘 사이에는 차이가 존재합니다. 그것은 신실한 합리적 선택의 보존 유무입니다. 덕 있는 사람의 합리적 선택은 그가 가진 덕(성품의 탁월성과 실천적 지혜)으로 인해 모든 경우에서 효력을 발휘합니다. 반면에 자제력 없는 사람의 합리적 선택은 마음 약함, 성급함 등의 심리적 문제점으로 인해 지속적으로 보존되지 않습니다. 이처럼 자제력 없는 사람이 합리적 선택을 보존하지 못한다는 것은 그가 덕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임의 징표입니다.(한 마리의 제비가 왔다고 해서 봄이 온 것은 아니라는 말을 상기하시기 바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분명 올바른 행위의 이치를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점에서 그의 자제력 없는 행위는 그의 합리적 선택의 산물이 아닙니다.
이 점과 관련하여 한 가지 유의해야 할 것은 신실한 합리적 선택이 성품의 탁월성과 실천적 지혜의 통합을 잘 보여주는 개념임에는 사실이지만, 그것이 곧 성품의 탁월성과 실천적 지혜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덕을 갖추지 않은 사람이 신실한 합리적 선택을 하는 경우는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실제로 이는 덕은 없으나 악덕으로 굳어진 성품 또한 갖지 않은 사람이 때때로 신실한 합리적 선택을 한다는 경험적인 사실에 의해 입증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제력 없는 사람이 신실한 합리적 선택을 한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반면에 이미 악덕을 굳어진 성품을 가진 사람은 결코 신실한 합리적 선택을 할 수 없습니다.
▒▒▒▒▒▒ [이현규 회원님의 글] ▒▒▒▒▒▒
아리스토 텔레스의 자제력 없음과 무절제의 차이와 그에 대한 기준인 합리적 선택에 대해 질문드립니다.
먼저, 자제력 없음과 무절제의 구분은 합리적 선택의 여부입니다. 무절제의 경우 올바른 앎을 소유하지 못하여 과도한 쾌락 추구를 좋은 것으로 생각하고 선택한 경우입니다. 반면 자제력 없음의 경우 옳바른 앎을 소유하였지만 욕망, 분노, 마음 약함, 성급함 등의 이유로 인해 쾌락의 과도한 추구에 이끌리는 경우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올바른 앎이란 합리적 선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합리적 선택의 의미를 파악할때 의문이 생깁니다. 합리적 선택이란 우리에게 달린 것에 대한 숙고적 욕구를 의미하며 목적에 대한 올바른 욕구(성품의 탁월성)와 수단에 대한 이성적 숙고의 참(실천적 지혜)을 전제로 하게 됩니다. 즉 성품의 탁월성과 실천적 지혜가 서로 통일되고 조화되어야 합리적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자제력 없음과 무절제의 구분을 합리적 선택의 여부로 파악하게 된다면 자제력 없음은 성품의 탁월성과 실천적 지혜를 동시에 전제하고 있다는 점으로 오해가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실천적 지혜가 있는 사람은 자제력 없음이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또한, 교재 59P를 보시면 무절제한 사람의 과도한 쾌락 추구를 합리적 선택의 결과물로 표현하고 있고 자제력 없음으로 인한 과도한 쾌락 추구는 합리적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와 관련해서 『니코마코스 윤리학』의 내용을 살펴봐도 교재의 내용과 같다는 점을 알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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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은 여러 가지 쾌락들을 [필수적인 범위를 넘어서] 지나치게 추구하는데, 그것들이 지나치기 때문에 혹은 합리적 선택에 의하여, 그 쾌락들 자체를 위해서 추구하며 거기서 나오는 다른 어떤 결과를 위해서 추구하지 않는다. 그 사람이 무절제한[방종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원래 뉘우치는 법이 없어서 고칠 수 없기 때문이다. 뉘우칠 줄 모르는 자는 고칠 수 없기 때문이다. 고쳐질 수 없고, 뉘우칠 줄 모르기 때문에 무절제한 사람이다. ‘뉘우칠 줄 모른다’고 하는 것은 무절제한 사람이 자신의 확고하면서도 확립된 결정에 따라 행위하기 때문이다.
또 [여러 가지 쾌락의 추구에서] 부족함이 있는 사람은 [방종한 사람에] 대립되는 사람이고, 그 중간적인 사람은 절제하는 사람이다. 또 여러 가지 육체적인 고통에 졌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합리적 선택에 의하여 그것들을 피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합리적 선택에 의하여 행위하지는 않는 사람들 가운데, 어떤 사람은 쾌락 때문에 [그런 행위를 하도록] 이끌려지게 되고, 다른 사람은 욕구에서 생기는 고통을 피하려고 하기 때문에 [그런 행위를 하도록] 이끌려지게 된다. 따라서 이 둘은 서로 다르다.(EN 7권 1150a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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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재와 『니코마코스 윤리학』의 내용을 바탕으로 합리적 선택의 의미를 파악해도 그것이 이성적 숙고인것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왜 무절제한 사람이 합리적 선택을 하였다는 것이 의문입니다. 혹여나 상대적으로 무절제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합리적 선택을 하였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합리적 선택이 좋은 목적을 열망하며 수단과 관련하여 참된판단을 하여야 한다는 의미와 모순되게 됩니다.(성품의 탁월성과 실천적 지혜를 전제)
질문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합리적 선택이 실천적 지혜와 성품의 탁월성을 전제하는 것이라면 자제력 없음과 무절제의 구분 기준으로 사용시에 모순이 발생하지 않습니까? (자제력 없는 사람은 실천적 지혜를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2. 교재와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는 무절제한 사람이 합리적 선택을 하였다고 설명되어지고 있는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됩니까? 아니면 이해하는 과정속에서 제가 오류가 있었던 것입니까?
이와 비슷한 질문을 질문게시판에서 검색하여 읽어봤지만 명쾌하게 해결되지 않아 질문드립니다.
좋은 가르침에 항상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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