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강의질문] 아리스토텔레스 질문드립니다
- 작성자
- 김병찬
- 등록일
- 2017년 04월 17일 17시 50분
- 조회수
- 324
- 첨부파일
-
질문 감사합니다. 질문하신 순서대로 답변드리겠습니다.
1.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적 탁월성이 완전한 의미의 탁월성, 즉 성품의 탁월성이 되기 위해서는 실천적 지혜의 인도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합니다. 대부분의 어린 아동의 실천적 지혜를 소유하지 못하므로, 이 주장에서 실천적 지혜의 소유 주체는 그것을 갖춘 성인 혹은 공동체입니다. 어린 아동은 도덕적인 공동체 안에서 실천적 지혜를 갖춘 성인의 인도에 따라 덕 있는 활동을 반복적으로 수행함으로써 성품의 탁월성을 소유하게 됩니다.
2) 최상의 즐거움은 완전한 의미의 행복, 즉 철학적 지혜에 따른 관조적 활동의 수반물입니다. 성품의 탁월성과 실천적 지혜에 따른 행복은 이차적인 행복이므로, 그러한 탁월성의 발휘에 수반되는 즐거움은 최상의 즐거움일 수 없습니다.
3)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최고선으로서의 행복을 철학적 지혜에 따른 관조적 활동으로 정의합니다. 그리고 실천적 지혜와 철학적 지혜의 관계와 관련하여 둘 사이의 관계를 의술과 건강으로 비유합니다. 이는 실천적 지혜와 성품의 탁월성은 인간의 궁극 목적인 행복한 삶의 실현을 돕는 일종의 수단일 뿐, 그러한 탁월성의 소유가 곧 행복은 아니라는 주장을 함축합니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의 또 다른 저작인 『정치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성품의 탁월성을 소유할 때 인간은 행복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그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그와 같이 주장했다고 말합니다.(실제로 『니코마코스 윤리학』에는 그러한 주장이 명시적으로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이러한 두 저작의 주장을 종합해 보면,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서 완전한 의미의 행복은 분명 철학적 지혜에 따른 관조적 활동입니다. 도덕적 삶은 그 자체 행복한 삶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은 행복한 삶을 실현하는데 필요한 필수적이고 본질적인 요소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인간은 성품의 탁월성과 실천적 지혜를 소유할 때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것의 소유만으로 행복이 이르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즉, 그것의 소유가 행복 실현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은 아닙니다.
▒▒▒▒▒▒ [박성재 회원님의 글] ▒▒▒▒▒▒
1) 아리스토텔레스는 성품의 탁월성은 반복적 활동, 즉 습관화를 통해서, 그리고 지적인 탁월성은 교육을 통해서 형성된다고 했습니다. 한편 성품의 탁월성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실천적 지혜가 반드시 동반되어야 형성될 수 있다고도 하였는데 그렇다면 성품의 탁월성은 공동체, 국가의 인도를 통해 실천적 지혜를 함양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습관화와 정서적인 부분을 통해 결과적으로 성품의 탁월성을 형성하게 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즉 성품의 탁월성은 습관화와 의지적인 부분, 그리고 실천적 지혜가 결합하여 형성되는 것인가요?
2) 아리스토텔레스의 '즐거움'과 '행복' 관련해서 최고의 즐거움은 최고의 활동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수반물이고 최고의 활동은 곧 철학적 지혜에 따른 관조적 활동, 즉 행복이므로 행복한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고통속에 있지 않고 필연적으로 최고의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고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진정으로 도덕적인 사람, 덕 있는 삶을 사는 사람은 어떤 경우에서도 고통 속에 있지 않으며 따라서 즐거운 삶을 살게 된다고 하셨는데 지적인 부분의 탁월성인 철학적 지혜에 따른 관조적 활동을 통한 행복한 사람이 아닌 도덕적인 사람이 어떻게 최고의 즐거움을 느끼게 되는 것인가요?
즉, 행복한 삶을 살기위해선 도덕적 덕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최고선의 조건에 따라 철학적 지혜에 따르는 관조적 삶을 살아야 하고 그랬을때 최고의 즐거움이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요?
3) 같은 맥락에서 행복을 철학적 지혜에 따른 관조적 활동이라고 정의한 아리스토텔레스에게 행복한 삶과 도덕적인 삶이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 것인가요? 행복한 삶과 도덕적인 삶의 관계가 궁금합니다
감사합니다.
본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