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강의질문] 질문드립니다.
- 작성자
- 김병찬
- 등록일
- 2017년 06월 13일 22시 07분
- 조회수
- 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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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감사합니다. 질문하신 순서대로 답변드리겠습니다.
1. 공리의 원리에 의하면, 어떤 행위는 그 행위에 관련되는 모든 사람의 행복의 집합적 총량을 최대한 증진할 때에만 선한 혹은 옳은 행위가 됩니다. 따라서 공리주의자가 행위 선택에 있어서 고려하는 것은 나 혹은 타인들의 개별적인 이익 관심이 아니라 나와 타인을 포함하는 전체의 이익 관심, 즉 인류의 집단적 이익 관심입니다. 따라서 전체의 이익을 증진하기 위한 목적으로 행해지는 자기 희생은 공리주의에서는 하나의 의무가 됩니다. 이러한 공리주의의 입장에 대해 비판자들은(특히 현대 덕윤리학자들) 공리주의가 도덕적 주체를 희생시키는 건전하지 못한 윤리적 입장이라고 비판합니다. 공리의 원리를 따를 경우, 실제로 많은 경우에서 행위자 개인의 이익을 희생될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행위자는 일인이고 관련 당사자는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서 2인 이상의 복수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공리주의는 도덕적 주체의 이익과 다수의 이익이 상충할 경우 전체의 이익을 위해 도덕적 주체의 이익을 희생할 것을 요구하는 윤리적 입장입니다. 인용하신 글은 도덕적 정당성을 가지는 자기 희생의 성격을 밝히고 있는 밀의 주장입니다. 즉, 자기 희생은 집단적 의미로서의 인류의 이익을 가져다 주는 것일 경우에만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이 인용하신 글의 의미입니다.
2) 스피노자에게 감정은 ‘신체의 변용과 그 변용의 관념’입니다. 따라서 ‘신체의 변용이 일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가 느끼는 슬픔’이라는 감정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스피노자에 의하면, 슬픔은 활동 역량이 감소되고 억제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슬픔의 겪는 정신은 능동적인 상태에 있을 수 없습니다. 달리 말해서 정신이 능동적으로 작용할 때에는 결코 슬픔을 느끼지 않습니다. 요컨대 능동적 슬픔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 [박성재 회원님의 글] ▒▒▒▒▒▒
1) 밀은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산출할 수 있다면 개인의 행복은 희생할 수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다수의 행복을 추구하면서 개인의 사익과 공익의 조화가 가능한 것인가요?
사익과 공익 중 공익을 택하게 된다면 개인의 희생은 불가피 한 것이 아닌가요?
개인의 이익과 타인의 이익을 공평무사하게 고려한다는 점에서 사익과 공익의 조화가 이루어지는 것인지, 아니면 공리주의에서 사회는 개인의 총합이므로 사회 전체의 이익이 곧 개인의 이익이라는 점에서 조화가 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밀의 주장인 "공리주의 도덕은 인간이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희생할 수 있다고 인정한다. 그렇지만 이것은 오직 다른 사람들, 즉 집단적 의미로서 인류의 이해관계를 기준으로 해서 개인의 행복에 기여할 때만으로 제한된다." 에서 집단적 의미로서 인류의 이해관계를 기준으로 해서 개인의 행복에 기여할 때 라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또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궁금합니다..
2) 스피노자의 감정과 관련하여 능동적 감정이란 내가 그것의 타당한 원인이 되는 감정으로서 자유로운 상태이며 수동적 감정이란 내가 그것의 타당한 원인이 아닌 감정으로서 부자유의 상태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감정 중에서 '슬픔'의 감정은 능동이 없으며 '수동'이므로 슬픔에 있어서는 우리 인간은 자유로워질 수 없는 것인가요? 반드시 신체의 변용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외부 사건에 대해서 우리는 슬픔을 느낄 수 있을텐데 그러한 상태에서도 자유로울 수가 없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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