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강의질문] 질문드립니다.
- 작성자
- 박성재
- 등록일
- 2017년 10월 06일 23시 43분
- 조회수
- 121
- 첨부파일
-
1. 우리가 왜 도덕적으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칸트의 대답은
- 인간성의 정식, 즉 인격의 존엄함 때문인가요 / 아니면 '해야 한다'는 '할 수 있다'를 포함하기 때문, 즉 인간은 이성(합리성)을 지니고 있으며 인과 필연성의 자연적 경향성을 극복하여 스스로 도덕법칙을 입법할 수 있는 자유의지(자율성)를 지닌 존재이기 때문인가요?
2. 칸트의 관점에서 도덕원리, 정언명령을 충족시키는 것보다 행복을 충족시키는 것이 더 어렵다고 하는데 행복은 자기 상태에 대한 전적인 만족, 평안함이라면 얼마든지 성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닌지 궁금합니다.
3. 에피쿠로스의 덕과 행복의 관계에서 덕은 쾌락의 성취를 위한 내재적인 수단인데 왜 그 자체로 바람직한 본래적인 덕이 되지 않는 것인가요? 내재적 또는 본래적 수단은 그 목적과 분리되지 않으므로 덕은 그 자체로 바람직한 덕이어야 하는게 아닌지 궁금합니다.
4. 뒤르켐의 자율성 개념은 사회의 도덕규칙을 지적으로 이해하고 수용해서 스스로 따르는 것이며 도덕질서에 대한 지식을 많이 성취할 수록 자율성의 정도가 높아진다고 하였는데, 왜 사회의 도덕규칙에 대한 지식을 많이 소유할수록 더욱 자율적으로 행위하게 된다는 것인가요?
5. 공자의 정명론에서 예를 통해 정명을 확립하는 것인지, 정명을 통해 예를 확립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6. 주자는 "사려가 아직 생기지 않고, 사물이 아직 이르지 않은 때에는 희노애락이 발현되지 않는다. 이 때는 심체의 유행이 고요하면서 움직이지 않는 상태이고, 천명지성의 본래 모습이 갖춰져 있는 상태이다. 이 상태는 지나침이나 모자람이 없고, 편벽되거나 기울어지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중'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미 심체의 유행 상태가 드러나 있으므로, 곧바로 성이라고 해서는 안된다." 라고 하였는데, 마지막 문장 '곧바로 성이라고 해서는 안된다' 에서
미발시에는 마음이 사물에 감응하지 않아 사려가 싹트지 않으므로 적연부동한 바탕에 성이 온전히 갖추어진 중을 이룬 마음 즉, 미발 = '중'이자 곧 '성'이 아닌가요? 또 이와 관련된 주자의 개념이 '중화신설'이라는 개념인가요?
감사합니다.
본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