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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내용질문

[1~2월 강의질문]  질문드립니다.

작성자
김병찬
등록일
2017년 10월 14일 07시 58분
조회수
334
첨부파일
질문 감사합니다. 질문하신 순서대로 답변드리겠습니다. 1. 칸트는 우리가 왜 도덕적으로 살아야 하는가라는 물음 이전에 보다 근본적인 물음, 즉 도덕은 확립 가능한가라는 물음에 답을 찾고자 하였습니다. 요컨대 그는 도덕의 확립 근거를 찾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인간이 본질적으로 초월적 자유라는 것에서 도덕의 확립 근거를 발견합니다. 2. 행복의 성취는 현실 세계의 많은 요인들의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한 요인들은 우리의 힘으로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칸트는 행복은 우리의 힘만으로는 성취할 수 없다고 봅니다. 3. 에피쿠로스에 의하면, 오직 목적만이 그 자체로 바람직한 것입니다. 원칙적으로 수단은, 그것이 본래적이든 비본래적이든 간에, 목적일 수 없고, 따라서 그것은 그 자체로 바람직한 것일 수 없습니다. 4. 자율이란 합리적 이유에 근거한 자기 규제, 즉 합리적 자기 규율이라는 의미를 지닌 개념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5. 정명은 사회적 지위에 따라 각자가 각자의 의무를 다하는 것입니다. 이는 정당한 사회적 질서가 확립되어 있고, 모든 사람이 그러한 사회적 질서에 순응할 때 가능합니다. 따라서 예는 정명의 바탕이 됩니다. 6. 심체가 유행했다면, 미발이 아니라 이발입니다. ▒▒▒▒▒▒ [박성재 회원님의 글] ▒▒▒▒▒▒ 1. 우리가 왜 도덕적으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칸트의 대답은 - 인간성의 정식, 즉 인격의 존엄함 때문인가요 / 아니면 '해야 한다'는 '할 수 있다'를 포함하기 때문, 즉 인간은 이성(합리성)을 지니고 있으며 인과 필연성의 자연적 경향성을 극복하여 스스로 도덕법칙을 입법할 수 있는 자유의지(자율성)를 지닌 존재이기 때문인가요? 2. 칸트의 관점에서 도덕원리, 정언명령을 충족시키는 것보다 행복을 충족시키는 것이 더 어렵다고 하는데 행복은 자기 상태에 대한 전적인 만족, 평안함이라면 얼마든지 성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닌지 궁금합니다. 3. 에피쿠로스의 덕과 행복의 관계에서 덕은 쾌락의 성취를 위한 내재적인 수단인데 왜 그 자체로 바람직한 본래적인 덕이 되지 않는 것인가요? 내재적 또는 본래적 수단은 그 목적과 분리되지 않으므로 덕은 그 자체로 바람직한 덕이어야 하는게 아닌지 궁금합니다. 4. 뒤르켐의 자율성 개념은 사회의 도덕규칙을 지적으로 이해하고 수용해서 스스로 따르는 것이며 도덕질서에 대한 지식을 많이 성취할 수록 자율성의 정도가 높아진다고 하였는데, 왜 사회의 도덕규칙에 대한 지식을 많이 소유할수록 더욱 자율적으로 행위하게 된다는 것인가요? 5. 공자의 정명론에서 예를 통해 정명을 확립하는 것인지, 정명을 통해 예를 확립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6. 주자는 "사려가 아직 생기지 않고, 사물이 아직 이르지 않은 때에는 희노애락이 발현되지 않는다. 이 때는 심체의 유행이 고요하면서 움직이지 않는 상태이고, 천명지성의 본래 모습이 갖춰져 있는 상태이다. 이 상태는 지나침이나 모자람이 없고, 편벽되거나 기울어지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중'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미 심체의 유행 상태가 드러나 있으므로, 곧바로 성이라고 해서는 안된다." 라고 하였는데, 마지막 문장 '곧바로 성이라고 해서는 안된다' 에서 미발시에는 마음이 사물에 감응하지 않아 사려가 싹트지 않으므로 적연부동한 바탕에 성이 온전히 갖추어진 중을 이룬 마음 즉, 미발 = '중'이자 곧 '성'이 아닌가요? 또 이와 관련된 주자의 개념이 '중화신설'이라는 개념인가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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