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팝업레이어 알림

뒤로

강의내용질문

[1~2월 강의질문]  질문드립니다!

작성자
김병찬
등록일
2019년 01월 27일 17시 35분
조회수
242
첨부파일
질문 감사합니다. 질문하신 순서대로 답변드리겠습니다. Q1. 물자체의 세계란 우리의 감각과 오성의 인식 작용을 통해 인식할 수 없는, 즉 경험의 한계를 초월하여 존재하는 형이상학적 본체의 세계입니다. 예지계는 예지적 능력을 통해 파악되는 세계, 즉 형이상학적 본체의 세계 혹은 물 그 자체의 세계입니다. 따라서 두 세계는 동일한 세계입니다. 쇼펜하우어는 칸트의 물자체, 즉 세계의 형이상학적 본체 혹은 본질을 의지라고 봅니다. Q2. 강의 시간에 설명드렸듯이 세계의 단일 본질은 의지라는 인식과 모든 존재자들의 본질의 동일성 인식은, 개별적 삶에 의지 부정을 통한 자타 일치, 동정심에 기초한 윤리적 삶은 논리적 관점에서 시간 순으로 배열한 것일 뿐, 실제로는 동시적으로 발생하는 사태입니다. Q3. 도덕적 행위의 근본 동기는 동정심입니다. Q4 1. 불안이 생겨나는 방법, 실존적 삶에서 불안이 행하는 역할과 관련하여 두 사상가의 관점은 상이합니다. 2. 어떠한 본질, 목적, 존재의 필연성도 가지지 않은 채 이 세계에 던져진 우연한 존재로서, 자신의 목적과 본질을 자유롭게 창조해야 하는 완전히 자유로운 존재이며, 자신의 자유로운 선택과 그 결과에 대해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주체적 존재가 사르트르가 생각한 실존의 참된 모습입니다. ▒▒▒▒▒▒ [윤하은 회원님의 글] ▒▒▒▒▒▒ Q1. 칸트가 물자체의 세계를 의지의 세계로 규정한 쇼펜하우어와는 다른 입장이라고 하는데, 칸트는 물자체의세계, 현상계 , 예지계 이렇게 세가지로 구분하고 물자체의 세계는 이성으로 도달할 수 없고, 신이나 영혼불멸을 요청해야 도달할 수 있다고 본것인가요? 현상계를 표상의 세계와 비슷하게 본것처럼 물자체로서의 의지가 예지계에 대응시킬 수 있는지 쇼펜하우어와 비교해서 설명부탁드립니다. Q2. 쇼펜하우어가 고통으로의 해방 방법 세번째를 동정심에 기초한 윤리적 삶으로 보았는데요 그런데 순서를 보면 세계의 단일 본질은 의지라는 인식 → 모든 존재자들의 본질의 동일성 인식 → 개별적 삶에 의지 부정을 통한 자타 일치 → 타자에 대한 동정심에 기초한 윤리적 삶 이라고 나와있는데 동정심보다 개별적 삶에 의지 부정이 먼저 일어나잖아요. 그렇게되면 이미 고통으로서의 해방 상태 아닌가요? 동정심을 통해 고통으로 해방이 되는 게 아닌 것 같아서 질문드립니다. 그리고 교재 229 쪽에서도 동정심의 가능근거 부분에서 동정심을 계기로 하여 자아와 타자가 일치될 수 있다는 것을 사실로서 입증해야만 한다. 라고 나와있는데 이또한 분명 자타일치가 먼전데 왜 동정심을 계기로 자타일치를 한다고 이야기하는지 잘모르겠습니다! Q3. 도덕적 행위의 근원을 개인적 삶에의 의지의 부정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한가요? 아니면 동정심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한가요? Q4. 그리고 사르트르와 키에르케고르의 불안은 개념적으로 동일하다고 볼 수 있을까요?? 마지막으로 Q5. 사르트르에게 본래적 실존, 참된 실존의 삶의 모습과 성격은 무엇인가요?

본문

댓글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