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강의질문] 원효, 지눌 질문있습니다^*^
- 작성자
- 김병찬
- 등록일
- 2015년 04월 28일 19시 09분
- 조회수
- 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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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감사합니다. 질문하신 순서대로 답변드리겠습니다.
1. 정을 선공부로, 혜를 교공부를 본 것이 아닙니다. 지눌은 남선종 혜능의 입장을 수용하여 정과 혜를 마음의 본체와 작용으로 간주합니다. 그래서 그는 정과 혜를 구분하는 입장에 반대하여 정혜쌍수를 주장합니다. 그리고 정혜쌍수의 본질을 마음을 대상으로 하여 그것을 닦는 것으로 간주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근거하여 지눌은 계, 정, 혜라는 불교 삼학을 구분하고, 그 중에서 선정에만 몰두해 있던 당대의 선종과, 반대로 교학 공부를 혜 공부로 여겨 그것에만 몰두해 있던 당대의 교종 모두를 비판하고, 마음을 닦아 그것은 본래 모습을 회복하는 것을 근본으로 삼고, 교 공부를 방편으로 하는 점수 체계인 정혜쌍수를 제시하였고, 이러한 수심의 체계를 중심으로 선종과 교종의 일치를 지향하였습니다.
2. ‘대승기신론소’의 해당 원문을 소개하는 것으로 답변을 대신하겠습니다.
진여•생멸 두 문에 따라 분별함에 있어서도 역시 같지 않음이 있으니 어떤 것인가? 진여문 중에서 포괄한 사법은 분별성이니 모든 법이 생기지도 않고 멸하지도 아니하여 본래 적정(寂靜)하지만 단지 망념(妄念)에 의하여 차별이 있다고 설명하기 때문이며, 심생멸문에서 설명한 사법은 의타성이니 모든 법이 인연으로 화합하여 생멸이 있음을 설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두 분별성과 의타성이 다시 같지는 않지만 또한 다르지도 아니하니 어째서인가? 인연으로 생긴 생멸하는 모든 법이 망념을 여의고서 차별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분별성이 의타성과 다르지 아니하며, 또한 이는 생멸문에 있는 것이다. 또 인연으로 나는 것은 자성 • 타성 및 공성을 모두 얻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의타성은 분별성과 다르지 않으며, 또한 이는 진여문에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분별•의타의 두 성은 다시 다르지는 않지만 또한 같은 것은 아니니, 어째서인가? 분별성법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며 또한 없지 않은 것도 아니요, 의타성법은 비록 다시 있는 것은 아니지만 또한 없지 않은 것이니, 이러므로 두 분별 • 의타성이 또한 잡란하지 않은 것이다. 이는 《섭론(攝論)》에서 삼성(三性)이 서로 의지하는 것을 설명하여 '다르지도 않으며 다르지 않지도 아니하니, 마땅히 이처럼 말해야 한다'고 한 것과 같다. 만약 이 삼성(三性)이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은 뜻을 잘 이해한다면 백가(百家)의 쟁론(諍論)을 화합하지 못할 것이 없을 것이다.
▒▒▒▒▒▒ [이수정 회원님의 글] ▒▒▒▒▒▒
교수님 안녕하세요^^
1.지눌에게 돈오점수는 마음을 닦는 공부인 선법이며, 점수의 내용인 선정과 지혜 역시 마음을 닦는 선 수행법입니다.
그런데 <2005년 10번 기출- 정혜쌍수를 교종과 선종의 수행방법과 연결시켜 설명하라는 문제에 대한 답변: 정혜쌍수는 교학 공부를 등한시하고 선 수행만을 강조하여 선정에만 치우친 선종과 교학 공부만을 강조하여 혜학에만 몰두하는 교종의 폐단을 물리치고 선교상자의 태도로 수행하여 올바른 깨달음에 도달해야한다는 지눌의 정신을 반영하고있는 수행법이다> 여기에서는 정을 선공부로, 혜를 교 공부로 본듯하여 질문드립니다.또한 어떻게 선수행법인 정혜쌍수를 토대로 선교일치가 가능한지 이해가 잘 가지 않습니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2. 원효 2013 1차 기출(사진첨부)
1) ㄴ,ㄷ- 심생멸문과 심진여문이 유식삼성 중 어디에 속하는지 궁금합니다ㅠㅠ
2) ㄹ- 왜 틀린 답변인지 궁금합니다.
항상 열정적인 강의 감사합니다 교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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