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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내용질문

[1~2월 강의질문]  질문 모아서 남깁니다.ㅠㅠ

작성자
김병찬
등록일
2020년 03월 03일 23시 15분
조회수
577
첨부파일
질문 감사합니다. 질문하신 순서대로 답변드리겠습니다. 1. 도덕적 가치의 근원은 이데아고, 그러한 가치는 현상계에서 사건과 사물에서 실현됩니다. 예를들어 현상계에는 여러 선한 것들이 있는데, 그러한 것들을 선한 것들로 만드는 ‘선’ 그 자체는 이데에계에 속한다는 것이 플라톤의 입장입니다. 2. 죄수는 동굴 안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을 지칭합니다. 중요한 것은 죄수의 상태가 의미하는 바입니다. 플라톤의 의하면, 죄수의 상태는 현상계의 실물이나 허상을 참된 실재인 것으로 믿고 있는 영혼의 상태, 달리 말해서 이데아에 대한 참된 인식이 아니라 의견으로 가득 차 있는 정신의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3. 플라톤의 의하면, 보편적이고 영원불변하는 대상으로 하여 지성이 인식한 것이 지식입니다. 이처럼 지식은 보편적이고 영원불변하는 것에 대한 앎입니다. 반면에 생성하는 대상, 즉 가변적인 것을 대상으로 하여 감각을 통해 획득되는 것이 의견입니다. 따라서 의견은 보편적인 영원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생성하는 것, 즉 가변적인 것과 관련된 앎입니다. 4. 아닙니다. 즐거움은 활동의 필연적 수반물이라고 할 때, 활동은 인간의 모든 활동을 가리치는 것입니다. 5. 에피쿠로스 학파는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회피하는 것을 인간의 자연 본성으로 봅니다. 이처럼 ‘인간은 본성적으로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회피한다’는 사실을 인간의 자연 본성을 보고, 쾌락을 인간의 최고 목적 혹은 최고선으로 간주하는 이론을 심리적 쾌락주의라 합니다. 에피쿠로스 학파는 이러한 심리적 쾌락주의의 입장에 근거하여 윤리적 쾌락주의를 확립합니다. 6. 네. 7. 사랑은 두 종교적 덕의 본질이자 바탕입니다. 즉, 신에 대한 완전한 사랑이 있기에 신에 대한 믿음과 천상의 나라에 대한 소망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8, 10 미움은 슬픔의 파생 감정이기 때문에 능동 미움은 없습니다. 반면에 사랑에는 능동 사랑과 수동 사랑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신에 대한 지적인 사랑은 능동 사랑입니다. 스피노자는 인간이 소유할 수 있는 궁극적이고 참된 사랑을 신에 대한 지적인 사랑이라 부르고, 이를 능동적인 감정으로 간주합니다. 여기서 신은 그 자체로 인간은 아니라는 점에서 외적인 것이지만, 우리의 본성이 신이 본성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와 분리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랑에 대한 스피노자의 정의와 능동적 감정으로서의 신에 대한 지적인 사랑 사이에 모순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9. 수동적 감정이란 나의 본성만으로 그것을 뚜렷하고 명확하게 인식할 수 없는 감정, 즉 나의 정신이 그것에 대한 타당한 관념(타당한 인식)을 소유하고 있지 않은 감정입니다. 스피노자에 의하면, 세계와 나 자신에 대한 타당한 인식을 소유하지 못할 때, 개인은 자신에게서 생겨난 감정을 자기 자신이 아니라 외부의 어떤 원인에 의해 생겨난 것으로 파악하게 되고, 결국 그러한 감정의 통제와 억제에 대한 무능력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반대로 세계와 자기 자신의 본성에 대한 참된 인식, 즉 세계의 인과 질서에 대한 전체적이고 타당한 인식을 소유하게 되면, 개인은 자신에게서 생겨나는 모든 감정을 자신의 본성만으로 타당하게 인식하게 됩니다. 자신의 본성만으로 타당하게 인식한다는 것은 곧 감정을 생산하고 그것을 통제 및 억제할 수 있는 힘을 가진다는 말입니다. 요컨대 우리는 세계와 우리 자신에 대한 타당한 인식을 소유하는 한 외부 원인에 의해 작용받지 않으며, 우리의 힘만으로 우리 자신과 세계에 변화를 생산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만약 외부 요인으로 인해 역량 변화가 발생했는데, 그 인과관계를 제가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다면 그건 능동적감정인가요, 수동적감정인가요?”라는 질문은 성립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스피노자에 의하면, 세계의 인과 질서에 대한 타당한 인식을 소유한 사람은 자신에게서 생겨나는 변용의 원인이 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 [김민정 회원님의 글] ▒▒▒▒▒▒ 안녕하세요. 김병찬 선생님의 동양, 서양, 한국 윤리 강좌를 수강하고 있는 김민정입니다. 강의를 수강하다가 의문이 남는 점을 모아 질문글을 남깁니다. 1) 플라톤 // 도덕적 가치는 이데아계/현상계 중에 어떤 것에 속하나요? 현상계에서 볼 수 있는 의로운 행동은 이데아계에 있는 ‘의로움’이라는 이데아가 근본이 되는 것인가요? 2) 플라톤 // 동굴의 비유에서 죄수 = 이데아를 깨닫지 못한 자들로 동일시가 안되는 건가요? 예전에는 그렇게 배웠었던 것 같은데, 31p에 나오는 그림을 보면 죄수는 인공물의 그림자밖에 보지 못하는 존재이고, 우리는 인공물 (생물과 무생물), 불 (태양)까지는 볼 수 있으니 죄수와는 동일시 되지 않는 것 같아서 여쭤봅니다. 3) 플라톤 // 교재 37p의 제시문에서 ‘의견은 생성에 관련된 것’이라는 말의 뜻이 이해가 되지 않아서 여쭤봅니다. 4) 아리스토텔레스 // 교재 78p에서 ‘즐거움은 활동의 필연적 수반물이다’라고 나와있는데, 여기서 즐거움은 (덕 있는 사람에게) (덕있는) 활동의 필연적 수반물이라고 해석해야 하나요? 즉, 괄호에 나와있는 부분이 생략되어 있다고 보는 건가요? 5) 에피쿠로스 // 에피쿠로스 학파가 인간의 자연본성으로부터 최고선을 이끌어낸 것이 윤리적 쾌락주의를 주장하는 것 (자연주의적 오류가 포함됨)이라 생각했는데,‘심리적 쾌락주의’라고 언급하셔서 이 부분에 대해 의문이 남습니다. 6) 아우구스티누스 // 좋은 사랑을 하는 사람은 곧 덕이 있는 사람이라고 봐도 무방한가요? 7) 아퀴나스 // 사랑은 믿음과 소망이 포함된 개념, 즉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있어야 도달할 수 있는 덕인가요? 8) 스피노자 // 사랑과 미움은 외부 원인의 관념을 동반하는 것이니 능동적 감정이 될 수는 없는건가요? 만약 가능하다면, 그 이유도 궁금합니다. 9) 스피노자 // 능동적감정/수동적감정을 이해할 때, 능동적 감정 : 나의 본성으로 설명할 수 있는 역량 변화 = 나 때문에 발생한 역량 변화 수동적 감정 : 나의 본성만으론 설명할 수 없는 역량 변화 = 외부 요인(혹은 외부요인+나)으로 인해 발생한 역량 변화 (+요인을 파악할 수 없는 감정) 이렇게 능동적 감정/수동적 감정이 감정의 발생 요인이 나인지, 외부 요인인지에 따라 구분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타당한 인식을 소유하면 능동적감정, 그렇지 못하면 수동적감정이라고 해서 이 부분이 정말 이해가 안됩니다ㅠㅠ 만약 외부 요인으로 인해 역량 변화가 발생했는데, 그 인과관계를 제가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다면 그건 능동적감정인가요, 수동적감정인가요? 자세한 설명 부탁드립니다ㅠㅠㅠ 아무리 돌려봐도 이해가 안되서요..ㅠㅠ 10) 스피노자 // 신에 대한 인식이 외부 원인 관념이면 어떻게 능동적 감정일 수 있냐는 질문에서 ‘신은 외적이자, 내적이다’라고 대답해주셨는데, 그 의미가 잘 이해가 안됩니다ㅠㅠ 설명 부탁드려요..ㅠ 아직 학교에서 전공 수업을 다 수강하지 못한데다가, 공부의 깊이가 깊지 못해 핀트에 어긋난 질문이나 잘못 이해하고 있는 부분이 많을 것 같습니다ㅠㅠ 양해 부탁드려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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