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강의질문] 불교, 쇼펜하우어 질문입니다
- 작성자
- 김병찬
- 등록일
- 2020년 04월 22일 00시 15분
- 조회수
- 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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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감사합니다. 질문하신 순서대로 답변드리겠습니다.
불교
1. 금덩어리(=금)은 자성이 없으므로, 자생, 타생, 공생이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무생입니다. 금덩어리를 연하여 생겨난 금사자 또한 자성이 없으므로 무생입니다.
2. ‘화엄경’에 제시되어 있는 차제삼관을 말하는 것입니다. 천태종은 화엄종의 관법이 차제삼관에 머물러 있다고, 그것과 자신들의 일심삼관을 구분합니다.
화엄오교의 내용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확인하시고 다시 질문해 주시면 성실히 답변드리겠습니다.
3. 유식 사상에 의하면, ‘나’와 ‘객관 세계’는 근본적으로 아뢰야식을 연하여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 공입니다. 만유의 토대가 되는 아뢰야식 또한 불생불멸하는 실체가 아닙니다. 그것은 훈습된 온갖 심신의 업이 화합하여 작용하는 것으로, 항상 유전 변화하는 것입니다.
4. 천태종과 화엄종의 입장은 용수의 중관 사상을 나름의 관점에서 해석하여 나온 것입니다.
쇼펜하우어
1. 네
2. 원문을 보다 정확히 번역한 것을 인용하는 것으로 답변을 대신하겠습니다.
“우리는 오히려 의지가 완전히 없어진 뒤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이 아직 의지로 충만한 사람에게는 무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거리낌 없이 고백한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의지가 방향을 돌려 스스로를 부정한 사람들에게도, 우리의 그토록 실재적인 이 세계는 모든 태양이나 은하수와 더불어 무인 것이다.” -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651쪽(쇼펜하우어 저, 홍성광 역, 을유문화사)
3. ‘개체’는 개별화의 원리에 따라 세계를 표상하고, 그러한 세계를 참된 세계로 착각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말하고, ‘인식 주관’은 심미적 직관을 행하고 있는 사람만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인식하는 주체를 의미하는 일반적인 용어입니다. 즉, 인식 주관은 어떤 특정한 성격을 지닌 개체를 지시하는 전문 용어가 아닙니다.
4) 의지의 본질은 맹목적인 충동이요 욕망입니다.
▒▒▒▒▒▒ [강효경 회원님의 글] ▒▒▒▒▒▒
교수님! 불교 질문 있습니다^^
1)
금사자론 제 5문에서
사자가 생기고 소멸하더라도 금덩어리는 증감이 없으므로 무생이다. 라는 말이 이해가 안갑니다.
금사자가 무생인건지, 금이 무생인건지, 사자가 무생인지 모르겠습니다...!
앞의 맥락 상 금사자 자체가 무생이라는 것 같은데 왜 금덩어리는 증감이 없으니 무생이다라는 말이 나오는지 이해가 안가요.
2)
천태종에서는 별교에 화엄경의 차제삼관에 입각한 가르침이라고 하는게, 이게 화엄종을 뜻하는건가요?
화엄종은 중관 공관 가관 삼관을 별개의 관으로 간주하지 않는데.. 천태종이 왜 이런식으로 분류를 했는지 궁금합니다..
또 화엄종에서도 천태종을 소승 점교 돈교와 공통된 가르침으로 동교일승이라 하는데.. 이 것도 왜 이런식으로 서로 분류했는지 모르겠습니다ㅠㅠ 공통된 가르침이 아닌 것 같은데 단지 비판한건가요?
3)
유식사상에서도 중관사상과 동일하게 아공법공을 주장하였는데, 마음인 "식"은 실재한다고 본 것이 맞나요?
그렇다면 식 자체는 존재하는 거면, 마음이 나 자신인데 왜 아공이 되는지 또, 식이 제법인데 왜 법공이 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식은 그냥 "아"와 "법" 모두에 속하지 않는건가요?
4)
용수의 중관 사상은 일체는 공인데 가명이 있으므로 중도의 이치에서 설한다는 중관사상이 천태와 화엄에서 말하는 삼관의 중관과 같은 말인가요?
다시말하자면, 용수의 중관과 천태화엄의 중관은 같은 중관인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저번에 남겨주셨던 쇼펜하우어질문 답변에 대해 몇 가지 더 질문하고 싶습니다.
1)
타인의 행복 목적은 단지 즐거움이 아니라 고통만을 제거 목적으로 하는 활동이고, 동정심의 근거 역시 타인과의 행복을 같이 나누는 것이 아니라 고통만을 함께 나누는 것이 맞죠?
2)
277페이지 첫 번째 원문 "무"에 관련하여 "의지를 완전히 폐기한 후에 남는 것은 무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의지가 스스로 전환하고 스스로를 부정하여~" 이 부분에서 의지를 완전히 폐기한 것이 의지가 스스로 전환하고 스스로 부정한 것과 같은 말 아닌가요? 왜 그러나 그와 반대로 라는 표현을 썼는지 이해가 안갑니다...!
3)
276페이지 첫 번째 원문에서 "이와 동시에 바로 이것 때문에 직관하고 있는 사람은 이미 개체는 아니다. 오히려 그는 순수한 의지가 없는, 고통이 없는, 시간이 없는 인식 주관이다." 이 부분에서 "개체"는 자신이 인식의 주체가 되는 개체를 뜻하는 것이 맞나요?
또 뒷 문장에 왜 인식주관이라는 표현을 하였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자체의 본질을 파악하는 것이라며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인식하는 인식주관이 아닌 물자체로서의 세계를 인식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저 인식주관이 무엇을 뜻하는건가요?
4)
의지랑 욕망은 같은 용어인가요?
항상 좋은 강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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