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강의질문] 아리스토텔레스 질문
- 작성자
- 김병찬
- 등록일
- 2020년 09월 28일 22시 35분
- 조회수
- 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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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감사합니다.
1. ‘Eudaimonia’는 ‘Eu: 잘, 좋은’과 ‘daimon: 영혼’의 합성어입니다. 그렇다면 이 헬라스 단어는 ‘좋은 영혼’으로 번역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 번역은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를 어떻게 정의했느냐입니다. 그에 의하면, 한국어 행복으로 번역되는 Eudaimonia(니코마코스 윤리학에 대한 한국어 번역서에 나오는 행복은 모두 아리스토텔레스가 사용한 ‘Eudaimonia’의 번역어입니다.)는 인간의 최선의 상태를 나타내는 용어고, 인간의 최선의 상태는 인간이 소유한 최선의 것이 완전히 실현된 상태입니다. 인간이 소유한 최선의 것은 인간의 영혼을 구성하는 이성이고, 이성이 완전히 실현된 상태란 이성이 지닌 최선의 기능이 온전히 발휘되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성이 지닌 최선의 기능이란 진리 인식, 즉 영원불변하는 신적 진리를 관조하는 것이므로, 이성이 이와 같은 관조 활동을 잘 수행하고 있는 상태가 인간의 최선의 상태, 즉 인간의 Eudaimonia입니다.
2. 건강은 탁월성이 아닙니다. 탁월성은 영혼을 구성하는 두 기능인 욕구하는 부분과 이성적 부분의 기능의 탁월한 수행 상태를 나타내는 개념입니다.
3. 무절제한 사람의 무지는 자신에게 참으로 좋은 것에 대한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앎과 그러한 앎에서 비롯되는 올바른 행위 원리에 대한 앎과 관련한 무지입니다.
아마도 플라톤의 대화편(고르기아스와 국가)에 등장하는 칼리클레스와 글라우콘의 주장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평가를 물으신 것 같은데, 이와 관련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명시적인 주장은 없습니다. 따라서 확답을 드리지 못하는 점 양해 바랍니다.
▒▒▒▒▒▒ [김범준 회원님의 글] ▒▒▒▒▒▒
Q1. 관조적 행복으로서의 행복 파트에서, '행복이란 가장 완전한 탁월성에 따르는 영혼의 활동'이라고 정의?되는듯 합니다. 그런데 행복(에우다이모니아)는 삶이 잘 풀리는 상태 아닌가요? 왜 행복이 활동(ex. 관조적 활동)이라고 표현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여기선 에우다이모니아를 의미하는 게 아닌가요?
2. 아리스토텔레스는 식물적인 부분에서의 탁월성ex. 건강 같은 건 탁월성이 아니라고 보나요? 아니면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의 대상이 아닌 것뿐인가요?
3. 아리스토텔레스는 악행의 원인이 무지라는 주장이 무절제한 (악덕이 있는) 사람에게는 적용된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무지라는 것은 실천하는 것까지 포함하는 앎에 대한 무지인가요? 칼리클레스나 글라우콘처럼 악행을 저지르는 게 좋다고 판단한 사람들을 아리스토텔레스는 앎과 무지와 관련하여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합니다.
좋은 강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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