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월 강의질문] 질문올립니다.
- 작성자
- 김병찬
- 등록일
- 2020년 10월 19일 21시 16분
- 조회수
- 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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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감사합니다. 질문하신 순서대로 답변드리겠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
1. 합리적 선택의 대상은 욕구의 대상인 좋음(선)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행위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요컨대 행위의 목적은 합리적 선택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욕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합리적으로 선택하는 행위는 이성의 작용이지 욕구의 작용이 아닙니다. 지난 번에 말씀드렸듯이 합리적 선택과 관련하여 욕구는 두 측면에서 작용합니다. 행위의 목적을 욕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합리적으로 선택된 것을 욕구하는 것입니다.
합리적 선택은 행위를 합리적으로 선택하는 이성의 작용과 관련된 개념이지 실천적 지혜, 품성의 탁월성이라는 두 탁월성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개념이 아닙니다. 물론 실천적 지혜와 품성의 탁월성를 지닌 사람은 항상 좋고 올바른 것만을 목적으로 욕구하고, 목적 실현을 위한 올바른 수단의 선택과 관련한 이성의 탁월성을 지닌 사람이기 때문에, 그러한 사람의 합리적 선택은 항상 옳습니다. 하지만 자제력 없는 사람의 올바른 합리적 선택처럼 두 탁월성을 소유하지 않아도 올바른 합리적 선택은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합리적 선택의 본질적으로 탁월성의 활동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의 활동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합리적 선택의 성격을 두 탁월성과 관련지어 이해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2. 자제력 없는 사람은 좋은 목적과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에 대한 지식을 소유한 사람이지만, 성급함이나 마음 약함과 같은 심리적 원인에서 생겨나는 분노나 감정에 대한 자제력 없음으로 인해 자신이 소유한 올바른 행위의 원리 혹은 올바른 합리적 선택에 반하여 행위하는 사람입니다.
3. 품성의 탁월성에서 욕구가 행하는 역할을 무엇인가?
품성의 탁월성은 욕구하는 부분의 탁월성이고, 욕구하는 부분은 감정과 행위를 선택하는 것과 관련된 영혼의 부분입니다. 그리고 감정과 행위를 잘 선택하는 품성상태가 욕구하는 부분의 탁월성인 품성의 탁월성입니다. 이러한 품성의 탁월성은 욕구하는 부분에 이성이 참여함으로써 형성되는 것으로, 이때 욕구는 인간에게 있어서 진정으로 좋은 것을 열망하는 것과 관련되고, 이성은 목적 달성을 위한 참된 수단을 합리적으로 숙고하여 선택하는 것과 관련됩니다. 이처럼 목적 달성을 위한 합리적 선택은 욕구하는 부분의 기능이 아니라 이성의 기능이기 때문에, 욕구하는 부분의 탁월성은 품성의 탁월성을 합리적 선택에 결부된 품성상태라 하는 것입니다. 중용과 관련하여 말하면, 합리적으로 숙고하여 중간을 선택하는 것은 욕구의 작용이 아니라 이성의 작용입니다.
스피노자
1. 스피노자의 ‘에티카’에 제3종의 인식에 대한 규정적 정의는 ‘신의 어떤 속성들의 형상적 본질에 대한 타당한 인식에서 사물의 형상적 본질에 대한 타당한 인식으로 나아가는 인식’입니다. 즉, 신의 어떤 속성들의 형상적 본질에 입각하여 사물의 형상적 본질에 대한 인식을 도출하는 연역적 인식이 제3종의 인식입니다. 그런데 스피노자는 이러한 제3종의 인식을 연역에 의한 인식이라 부르지 않고 직관에 의한 인식이라 부릅니다. 이러한 스피노자의 용어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직관과 연역을 엄격히 구분하고, 연역을 오류의 근원으로 보는 당대의 일반적 인식론에 성격을 우선 명확히 이해한 후, 직관과 연역의 엄격한 구분에 반대하는 스피노자의 인식론적 논의를 자세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제 생각에 그러한 작업은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현재 우리에게는 시간 낭비가 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제3종의 인식에 대한 스피노자의 정의만을 정확히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3. 네.
4. ‘에티카’에 나오는 본질(본성)의 정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그것이 주어지면 어떤 사람도 또한 필연적으로 정립되고 그것이 제거되면 그 사물도 또한 필연적으로 없어지는 그런 것, 또는 그것이 없으면 그 사물이, 또 역으로 그 사물이 없으면 그것이, 존재할 수도 인식될 수도 없는 그런 것이 어떤 사물의 본질에 속한다고 나는 말한다.”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 혹은 양태는 신의 본질 혹은 속성의 변형태입니다. 신의 속성은 무한하므로, 무한한 속성으로부터 다양한 본질을 소유한 무한한 사물들이 생겨납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물들의 존재 원인은 신의 본질이므로, 사물들의 본질에 대한 참된 인식은 궁극적으로 신의 본질에 대한 인식에 입각할 때 가능합니다.
5. ‘신’, ‘사랑’이라는 개념의 의미와 스피노자가 ‘지적인 사랑’이라는 용어를 선택한 이유를 다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윤효섭 회원님의 글] ▒▒▒▒▒▒
안녕하세요 교수님
아리스토텔레스
합리적 선택에 대해 지난번에 여쭤봤는데 정리해서 생각한 부분이 맞는지 확신이 가지 않아서 여쭤보려 합니다
1. 합리적으로 목표에 대해 '선택'하는 것은 실천적 지혜이고 이를 행위로 옮길 수 있도록 '욕구'하는 것은 욕구하는 기능(품성의 탁월성) 이고 실천적 지혜는 선택된 행위를 욕구하게 끔 압력을 가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되는지 궁금합니다.
2. 자제력 없는 사람은 못되지는 않아서 좋은 것을 욕구하고 나름의 이성으로 좋은 수단도 선택했지만 이를 행위로 옮길 수 있도록 '욕구'하는 부분에서 '감정'이나 '다른 욕망'의 개입을 받아서 산출에 실패한다고 이해하면 괜찮을까요?
3. 만약에 품성의 탁월성을 합리적 선택에 결부한 품성상태가 아니라 합리적 선택을 하는 품성상태라고 하면 틀린 말이 되나요? 합리적 선택을 욕구하는 품성상태라고 하는게 맞는거 같은데, '중간을 선택하는 품성상태'라고 하면 헷갈려서 여쭤봅니다.
중용은 실천적 지혜에 따라 합리적으로 선택한 것 이고 그것을 욕구(선택) 하는 것은 품성의 탁월성에 따른 것이라고 정리해도 괜찮을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품성의 탁월성은 (실천적지혜에 따라 선택한 ) 중간을 선택(욕구)하는 품성상태 이다. 이렇게요 아니라면 실천적 지혜랑 동일한 것처럼 보여서 여쭤봅니다..
(질문이, 실천적 지혜는 이성적 숙고를 통해 중간을 선택하는 지적인 탁월성 이라고 할 때 선택은 합리적 선택을 의미하고 품성의 탁월성은 중간을 선택하는 품성상태 라고 할 때는 합리적 선택을 욕구한다는 의미에서의 선택인지로 정리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스피노자
1.직관이라는 표현은 타당한 인식을 통해 타당한 인식으로 나아감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해도 될까요?
2. 그렇다면 사물의 본질에 대한 직관 = 신의 본성의 필연성에 대한 타당한 인식에 따라 사물의 본질을 타당하게 인식하는 것이라고는 말할 수 있지만, 제 3 종의인식이란, 신의 본성의 필연성에 대한 타당한 인식에 따라 사물의 본질을 직관하는 것 이라고 하면 반복되는 말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직관 안에 이미 신에 대한 인식에 따른 사물의 본질에 대한 인식 이라는 말이 포함되어 있는 개념인지 궁금합니다.
3. 2종의 인식에서 말하는 인식은 공통관념으로부터 연역적으로 도출하는 인식의 구조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될까요?
4. 본질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3 종의 인식에서 말하는 사물의 본질이란 연장성과 사유 이외에도 그 사물을 구성하는 모든 원인과 속성을 알아내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될까요? 우리는 이미 실체의 속성이 연장성과 사유를 가진다는 것을 알고 있고 이 것이 모두 대응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그렇다면 연장성이라는 성질 하나만 알면 사물의 본질을 다 아는 것이 아닌가요? 제가 생각하는 본질은 그것이 그것인 이유에 대한 것인데 주변부 까지 다 아는게 본질을 아는 것인가요?
5. 신에 대한 지적인 사랑에서 정신의 만족이 생긴다는 것은 , 사랑이라는 것은 필연적으로 사랑하는 사물을 현실에 소유하고 유지하려고 노력하기 떄문에 신에대한 지적인 사랑을 하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더 인식하게 되고 그러면 더 자기실현하고 더 기쁨을 얻기 때문에 라는 말로 이해해도 될까요?
나바에즈
1.저는 도덕적 지혜와 실천적 지혜가 선언적 지식과 절차적 지식의 다른표현인줄 알았는데 지난번 주신 답변을 보니까 이 둘은 윤리적 기술을 잘 활용하고 있는 상태와 관련되는 것으로 덕인 것인가요? 윤리적 기술도 덕이고 실천적 지혜도 도덕적 지혜도 덕이라면 윤리적 기술을 지니고 있는 사람은 도덕적 지혜와 실천적 지혜를 겸비한 사람이다. 이렇게 표현되는건 괜찮은가요?
(지난번에는 도덕적 지혜와 실천적 지혜가 지식을 지시하는 명칭인줄 알고, 그것들이 결합된 것이 윤리적 기술인 것이냐고 여쭤봤습니다. )
항상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교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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