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강의질문] 소피스트, 소크라테스, 플라톤
- 작성자
- 김병찬
- 등록일
- 2021년 01월 12일 18시 28분
- 조회수
- 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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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감사합니다. 질문하신 순서대로 답변드리겠습니다.
1. 프로타고라스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비판은 도덕판단의 우열 결정 기준과 관련한 프로타고라스의 실용주의적 입장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인간 만물 척도설이라는 프로타고라스의 인식론적 입장과 덕의 교사로 자처한 그의 태도 사이에 존재하는 모순을 지적한 것입니다. 따라서 프로타고라스의 실용주의 입장을 가져와 소크라테스의 비판의 적절성을 검토해 보는 것은 소크라테스의 비판 의도와 비판의 대상을 고려할 때 유의미한 작업이라 생각되지 않습니다.
2, 3. 도덕판단의 우열 결정 기준과 관련한 프로타고라스의 실용주의적 입장은 윤리적 상대주의의 핵심 입장을 대표하는 입장이 아니라 오히려 현대 실용주의의 원류가 되는 입장입니다. 따라서 윤리적 상대주의의 핵심 입장을 대상으로 한 비판의 타당성을 프로타고라스의 그와 같은 입장에 의거하여 그 타당성을 검토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3강-4강]
1. 덕은 후천적으로 형성되는 것으로서, 선천적으로 갖추어진 덕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소크라테스에 의하면, 훈련이나 교육을 통해 이성을 완전하게 하여 지식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은 덕이 없는 사람입니다.
2. 소크라테스가 인간에게 참으로 좋은 것 혹은 인간의 선이라고 말한 것은 개인에 따라 그 내용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것입니다.
3. 이성은 무엇인가를 인식하는 작용을 하는 정신의 기관이고 지식 혹은 지혜를 그러한 이성 작용의 결과물입니다.
4. 이데아란 개별 존재자들의 근원으로서, 그것들의 본질이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다양한 아름다운 것들의 공통 본질은 아름다움인데, 이 본질은 아름다움(美)의 이데아가 질료를 지닌 개별자들에 관여함으로써 생겨난 것입니다. 이처럼 아름다움의 이데아는 아름다운 것들의 본질이지만, 그 자체 아름다운 것들은 아니기 때문에, 플라톤을 아름다움의 이데아를 ‘아름다운 것들’과 구분하여 ‘아름다움 그 자체’라 부릅니다.
5. 어떤 것의 본질이란 어떤 것을 그와 같은 방식으로 존재하게 하는 것으로서, 그것이 사라지면 그 존재도 사라지게 되는 그러한 것입니다. 또한 본질은 개별자들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의 근원입니다. 즉, 다양한 개별자들은 각각 다양한 본질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구분되는 것입니다. 소크라테스에 의하면, 개별자들이 지닌 고유한 기능이 곧 그들의 본질이고, 그러한 본질이 완전히 실현된 상태(자기 실현 상태), 즉 고유한 기능이 탁월하게 발휘되고 있는 상태가 그러한 본질을 지닌 개별자에게 있어서 최선의 상태입니다. 그런데 모든 존재자들은 본성적으로 선을 추구하기 때문에, 자기 본질의 완전한 실현 혹은 기능의 탁월한 발휘 상태는 모든 존재자들의 추구하는 목적이 됩니다.
▒▒▒▒▒▒ [김예진 회원님의 글] ▒▒▒▒▒▒
[1강-2강]
1. 소크라테스가 소피스트를 비판하면서 ‘프로타고라스는 지혜에 있어서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더 뛰어나다는 것을 주장한다. 이때 그는 어떤 근거로 자신이 더 현명하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 이미 그에 의하면 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보다 더 현명할 수 없다.’ 라는 말을 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의 의견이 상대주의적 윤리설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더 현명하다는 주장은 할 수 없다고 하고 있는데요. 소피스트는 도덕과 관련하여 ‘더 나은 의견’의 존재를 실용성에서 찾았고 도덕규범 체계를 사회적 관습으로 보았는데, 그렇다면 더 실용적이고 사회적 관습에 부합하는 것을 더 우월한 도덕적 가치가 있다고 하는 것이잖아요? 그러면 실용적이고 사회적 관습에 부합하는 지혜를 가진 소피스트가 덕을 교수하는 행위는 상대주의 윤리설과 모순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김병찬 교수님의 강의에서 등산로의 예를 보면, 사람들이 안전하고 유용하다고 생각한 등산로가 결국 공식적인 등산로로 채택되어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게 된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렇듯 소피스트가 덕을 교수하는 것은 안전하고 유용한 등산로를 알려주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이는 소크라테스의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근데 소트라테스의 비판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타당하니까 이렇게 교재에도 실리는 거겠죠?
2. 위와 같은 맥락의 질문입니다. 윤리적 상대주의의 문제점에서 사회 개혁의 의지 상실과 관한 부분인데요. 모든 규범이 상대적으로 옳기 때문에 그 규범을 변혁할 수 없는 것이 상대주의가 비판받는 점이라고 했는데, 앞선 질문에도 있듯이, 상대주의에서는 유용성과 실용성을 기준으로 더 나은 의견을 결정한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사회 개혁에 있어서 더욱 실용적인 가치를 지향하며 사회를 개혁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사회 개혁이 어려운 건지 궁금합니다.
3. 또한 윤리적 상대주의의 문제점 1번에서 선악 판단은 진리성이 아닌 개인에게 맡겨지므로 결국 강한 자가 이기는 약육강식의 논리로 흐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셨는데요, 이 때 프로타고라스의 실용주의 윤리설에 따라 힘의 차이가 아닌 실용성으로 도덕 판단을 하면 약육강식으로 흐르지 않고 더 나은 의견을 채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강한 자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으로 우월한 실용적인 의견이 이기는 것 아닌가요?
[3강-4강]
1. 소크라테스에게 덕은 후천적으로 형성되는 것인가요? 보충자료 7쪽을 보면 2)번에 6번 ‘모든 개별적인 덕을 지식이 정신적인 것들을 주도함으로써 형성되는 것이다.’ 라는 부분이 있습니다. 인간의 고유한 기능은 이성이고, 이를 탁월하게 발휘하는 것이 덕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고유한 기능인 이성을 발휘하지 못해서 덕이 없는 경우 또한 있다는 것인가요? 그렇다면 이때는 후천적인 덕이 형성되지 못한 상태이고, 따라서 모든 덕은 선천적일 수는 없고 후천적인 학습으로만 가능한건가요?
2. 소크라테스의 지행합일 논리에서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에게 좋고 유익한 것만을 추구하기 때문에 오직 선을 추구할 뿐 악 그 자체를 욕구하지는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만약 자신에게는 선이지만 타인에게는 악일 경우에는 본능적으로 그 행위를 추구하게 되나요? 아니면 애초에 자신에게는 선하지만 타인에게는 악한 행위란 없다고 보나요?
3. 소크라테스 부분에서 대화편 메논에 등장하는 부분 중 5번에서 ‘덕은 정신적인 것이 지식(지혜)에 따라 바르게 이용된 것이다.’라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 때 지식과 지혜가 있는 자리에 이성이 들어가도 옳은 말인가요? 소크라테스에게 지식과 지혜, 이성은 어떤 관계인가요?
4.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설명하실 때 아름다운 것들의 공통 본질은 아름다움이고 이는 이데아라고 하셨는데, 미의 이데아가 아름다움이라는 뜻인가요? 그럼 아름다움이라는 것 자체가 하나의 이데아라는 뜻인가요?
5. 플라톤의 선의 이데아에 관한 설명에서 목적론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설명하셨습니다. 모든 존재의 목적은 선이고, 선은 본질이 완전히 실현된 상태(자기실현)라고 하셨는데, 목적과 본질의 명확한 차이가 무엇인가요? 존재하는 모든 것은 목적 때문에 존재한다고 했고, 무언가의 본질은 그것이 있어야만 그 존재가 있는 것, 즉 고유한 기능이라고 했습니다. 무언가에 대한 참된 인식은 그것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고 그것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라고도 하셨습니다. 목적과 본질, 이 둘의 정확한 차이 및 개념을 알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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