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강의질문] 3주차 질문드립니다.
- 작성자
- 김병찬
- 등록일
- 2021년 01월 26일 16시 12분
- 조회수
- 362
- 첨부파일
-
질문 감사합니다. 질문하신 순서대로 답변드리겠습니다.
1, 2. 나의 본성이 그것의 타당한 원인이 아닌 감정, 달리 말해서 나의 본성을 통해 그것의 본성을 뚜렷하고 명확하게 인식할 수 없는 감정을 수동적 감정이라 합니다. 또한 수동적 감정은 내가 그것에 대한 타당한 관념을 소유하고 있지 못한 감정, 즉 그것에 대한 타당한 인식을 소유하지 못한 감정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타당한 인식이란 타당한 원인을 통한 인식을 말합니다. 나에게서 결과로 생겨나는 감정의 타당한 원인은 영원불변하고 필연적인 인과적 자연법칙(신의 본성의 필연성)에 따라 내가 존재하는 방식인 나의 본성입니다. 내가 감정의 원인인 신의 본성과 나의 본성에 대한 참된 인식을 소유하고, 그러한 인식을 통해 감정의 본성을 뚜렷하고 명확하게 인식하면, 나의 정신은 감정에 대해 능동적으로 작용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그러한 감정을 일러 능동적 감정이라 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내가 감정의 원인인 신의 본성과 나의 본성에 대한 참된 인식을 소유하지 못하면, 나의 정신은 감정에 대한 타당하지 못한 관념 혹은 혼란한 관념을 가지게 됩니다. 이 경우 정신은 감정에 대해 수동적인 상태에 놓이게 되기 때문에, 그러한 감정을 수동적 감정이라 부릅니다. 요컨대 능동과 수동은 감정의 상태를 지시하는 용어가 아니라 정신의 상태를 지시하는 용어이고, 그것들은 감정의 원인인 신의 본성과 나의 본성에 대한 참된 인식의 소유 여부에 의해 결정되는 것입니다.
3. 자연법의 제1원리와 자연법 일반 명령에 대한 인식은 도덕적 직관의 산물입니다.
4. 답을 얻기 위해서는 아퀴나스의 정의를 살펴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입니다. 아퀴나스는 의지를 이성적 욕구(능력) 혹은 지적 욕구 능력으로 정의합니다. 이 정의에서 욕구는 이성이 지적으로 숙고하여 선택한 선을 추구하는 욕구로서, 그것은 이성에 의해 산출되는 욕구입니다. 따라서 아퀴나스가 말하는 의지는 이성이 판단한 것을 추구할 수도 있고 그렇게 하지 않을 수도 있는 독립적인 정신의 능력이 아니라 이성이 판단한 것에 따라 작동하는 정신의 욕구 능력입니다. 이러한 의지는 이성의 능동적 작용의 산물이므로, 아퀴나스는 자유의지를 ‘이성과 의지의 능력’이라 정의하고, 그러한 자유의지에서 비롯되는 행위를 참된 의미에서 인간이 주인인 행위라고 규정합니다.
인간의 이성은 판단에 있어서 오류를 범할 때가 있습니다. 달리 말해서 악을 선으로 판단할 때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인간은 악을 욕구하게 되고 결국 나쁜 행위를 하게 됩니다. 이러한 경우에도 의지가 이성적 욕구 능력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습니다.
▒▒▒▒▒▒ [김나윤 회원님의 글] ▒▒▒▒▒▒
안녕하세요! 강의 수강하는 학생입니다.
스피노자에 대해 질문드리고 싶은 부분이 있어, 칼리폴리스에 문의를 남기게 되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스피노자의 '수동적 감정'과 관련된 내용이 궁금합니다.
우선 스피노자에게 세계는 필연 법칙으로 이루어지는 세계입니다. 그리고 나의 본성을 통해 뚜렷하고 명확하게 인식될 수 있는 감정이 능동적 감정이며, 그렇지 않은 감정이 수동적 감정입니다.
1. 여기에서 수동적 감정은 또한 우리가 그것의 타당하지 않은 원인인 감정이라고 합니다. 이때 우리가 정말 타당하지 않은 원인인가요?(즉 우리의 본성이 이것의 원인이 아니라, 우리의 본성이 아닌 다른 외부의 것이 이것의 원인인가요?) 혹은, 나의 본성이 이 감정의 타당한 원인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인지하지 못해 이 경우에 나의 본성이 '타당하지 않은 원인'이라고 생각하며 그 감정을 수동적 감정이라고 명명하는 것인가요? 달리 말해서, 우리가 감정의 타당하지 않은 원인이 아니라 본래는 타당한 원인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인식이 세계의 필연성을 인지하지 못해 우리가 감정의 타당한 원인이라고 생각하지 못해 우리가 이 감정의 타당하지 않은 원인이라고 생각했을 때 이 감정이 수동적 감정이 되는 것인지, 아니면 원래부터 수동적 감정으로 만들게 하는 외부의 원인이 있는것인지 이것이 궁금합니다.
2. '나의 본성이 감정의 ~한 원인'이 된다라고 할 때, 이 '본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단순히 신체와 정신을 포함한 '나'를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나의 본성'을 만든 '세계의 본성', 즉 '세계의 필연성'을 포함하는 것인지요?
수동적 감정을 이해하기가 참 어렵네요. 답변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
공부하다가 더 궁금한 부분이 생겨, 아퀴나스에 관련해서도 질문 드립니다.
3. 아퀴나스에게 있어서 자연법의 제 일 원리가 아닌, 자연법의 일반 원리들(종족을 번식하라 등)은 도덕적 직관의 결과인가요, 양심의 결과인가요?
4. 서양윤리학사 p.242의 두 번째 문단 위에서 다섯 번째 줄에는, "우리의 행위가 의지로부터 출발해서 이성이 파악한 목적을 향해서 나아갈 때 우리는 자유 의지를 발휘하는 것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아퀴나스는 주지주의이며, 이는 이성이 선택한 것에 따라 의지가 부여되어 행위가 산출된다는 의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서양윤리학사의 이 구절은 이러한 점을 드러내고 있지 않은 것 같아 헷갈립니다. 아퀴나스 또한 비록 이성이 판단을 하더라도, 의지가 발휘되어 이것을 지키느냐 지키지 않느냐가 관건이 되는 것이 아닌가요,,? 그렇다면 의지가 행위의 근본적인 동기가 되는 것이 아닌가요? 시간상 선후 관계가 이성이 먼저 결론을 내리기 때문에 주지주의라고 하는 것인가요? 혹은, 자유 의지의 개념 자체가 이성과 의지의 능력이기 때문에 주지주의라고 하는 것인가요? 그러나 자유의지 부분에서 '의지는 오직 이성의 판단에 따라 의욕 작용을 하는 정신의 능력이다.'라는 것은 위의 아퀴나스의 구절에 따르면 그렇지 않은 것이 아닌지 궁금합니다..
더해서 아퀴나스는 우리가 항상 자연법에 일치하게 행위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는 이성이 내린 명령에 우리의 의지가 따르지 않아 도덕적인 악이 생긴다고 보는 것 같은데요.. 여기에서 정말 의지는 이성이 판단한 것에 따라서만 행위하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의 의지를 가지고 있는 존재가 아닌지 궁금합니다.
아직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많아, 질문이 두서 없음에도 불구하고.. 질문 올려봅니다. 감사합니다.
본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