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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내용질문

[1~2월 강의질문]  서양 중세 질문드립니다.

작성자
김병찬
등록일
2021년 02월 23일 21시 07분
조회수
185
첨부파일
질문 감사합니다. 질문하신 순서대로 답변드리겠습니다. 1. 존재의 위계 질서에서 향유와 사용은 상대적인 것입니다. 신과 물질 및 인간의 관계에서 물질과 인간은 신의 섭리를 이루기 위해 사용되어야 할 수단입니다. 신은 그 어떠한 경우에도 사용되어서는 안 되며 오직 향유해야 할 존재로서, 인간이 그 자체로 사랑해야 할 존재입니다. 인간과 물질의 관계에서 물질은 인간이 설정한 목적을 위해 사용되어야 할 존재입니다. 따라서 인간보다 물질을 더 사랑하는 것은 전도된 사랑입니다. 인간은 정신과 육체로 이루어진 존재입니다. 이 중 정신에 속하는 것이 육체에 속하는 것보다 고귀한 것이기 때문에, 후자보다 전자를 더 사랑하는 것이 좋은 사랑이고 후자를 더 사랑하는 것은 전도된 사랑입니다. 1-1. 존재의 위계 질서에 따라 신을 가장 사랑하고, 신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동료 인간인 이웃을 사랑하며, 인간의 사명인 신의 섭리를 이루기 위한 목적으로 물질을 사랑하는 것이 좋은 사랑입니다. 반면에 육체적이고 감각적인 욕구에 매몰되어 그러한 욕구를 충족시켜 줄 것으로 여겨지는 물질을 다른 어떤 것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나쁜 사랑입니다. 119쪽 인용문에서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하고자 한 것이 이것입니다. 질문2. 질문 내용과 관련한 두 사상가의 직접적인 언급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정확한 답변을 드릴 수 없는 점 양해 바랍니다.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자연법은 모든 인간의 행동을 규제하는 보편적인 도덕법이지 기독교도들에게만 적용되는 행위 규범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앙과 종교적 계율을 무엇보다 우선시하는 것이 신학자들의 기본 태도이므로, 종교적 계율과 도덕법이 충돌할 경우, 추측하건대 두 사상가는 분명히 전자를 우선시하리라 생각됩니다. ▒▒▒▒▒▒ [전예진 회원님의 글] ▒▒▒▒▒▒ 질문1. 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 향유할 것을 향유하고 사용할 것을 사용하는 것이 ‘좋은 사랑‘이라 하였고, 향유할 것은 어떤 존재자를 존재자 그 자체로 사랑하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신은 향유할 존재이고 물질은 사용할 것이라면, 인간은 어떤 존재이며 변화하고 완전하지 않은 인간을 사랑하는 것은 좋은 사랑과 전도된 사랑 중 어디에 해당하는 것인가요? 질문 1-1. 추가로, 교재 119페이지 원문(‘신에 대한 사랑, 이웃에 대한 사랑이 사랑입니다’)으로 보아 좋은 사랑에 가깝다는 것이 추측되오나,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어째서 좋은 사랑에 속하는지(혹은 가까운지), 그리고 신을 사랑하고 인간(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좋은 사랑에 속할 수 없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질문2. 아퀴나스는 자기 생명을 보호하는 것이 자연법에 속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우구스티누스는 『가톨릭교회의 습속과 마니교의 습속』에서 ‘잘 산다는 것은 분명히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신을 사랑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목숨을 다한다.’라는 것이 마음을 다 하는 것의 단순한 비유인지, 문장 그대로 신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행위인지 궁금합니다. (신을 긍정하면 죽임을 당하고 부정하면 죽임을 당하지 않는 상황..?) 신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행위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와 아퀴나스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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