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강의질문] 정약용, 불교, 장자
- 작성자
- 김병찬
- 등록일
- 2021년 03월 09일 17시 55분
- 조회수
- 372
- 첨부파일
-
질문 감사합니다. 질문하신 순서대로 답변드리겠습니다.
1. 성리학은 하늘을 도덕의 근원으로 봅니다. 하지만 정약용은 성리학이 말하는 하늘은 기로 이루어진 존재들의 운동 방식을 드러내는 사물의 운동 원리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에 도덕적 가치의 근원도 될 수 없고, 도덕판단의 기준도 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요컨대 정약용의 관점에서 성리학의 하늘은 도덕의 근원이 아닙니다. 그리고 성리학의 이법으로서의 천은 의지, 오호의 감정, 권능, 위력 등과 같은 인격성을 지닌 상제와 같은 인격적 존재가 아닙니다.
2. 강의 시간에 제가 말씀 드렸든 것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일체는 무상하기 때문에 고정불변하는 자성을 지닌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제법무아이다. 괴로움은 무상한 것을 무상한 것으로 깨닫지 못하여 무상한 것에 애착함으로써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에, 무상한 것은 괴로움이다. 고정불변하는 자성을 지닌 ‘나’는 없으므로, 내가 무상한 존재임을 안다면 괴로움을 받는 내가 없음을 알게 된다. 즉, 인연 화합의 산물이 나는 괴로움을 받는 고정불변하는 주체가 아니다.
3. 장자에 의하면, 기는 도로부터 생성되고, 그렇게 생성된 기는 모든 존재를 구성하는 근원적이고 공통적인 요소가 됩니다. 이런 점에서 기를 모든 존재의 일원적 근원이라 하는 것입니다.
4. 식전변이 맞습니다. 혼란을 드려 죄송합니다.
▒▒▒▒▒▒ [김예진 회원님의 글] ▒▒▒▒▒▒
1. 정약용은 하늘을 이치로 보는 성리학의 이법천 개념을 비판하고, 상제천 개념을 들었다고 알고 있는데 이법천과 상제천 모두 하늘을 도덕의 근원으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나 인격적 존재라고 보는 점에서나 공통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성리학의 하늘과 정약용의 상제천 의 차이를 잘 모르겠습니다. 구분되는 둘의 특징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2. 교수님께서 근본불교를 설명하실 때 제법무아 부분에서 '제행은 무상하다. 무상한 것은 괴로움이다. 괴로움은 내가 아니다.'라고 하시면서 괴로움을 받는 나라는 실체가 없으므로 무아, 제법무아이다. 라고 설명해주셨습니다. 여기까지는 이해가 잘 됩니다만, 보충자료에 '일체는 무상하고 무상한 것은 나가 아니다.'라는 부분이 있는데, 이것은 위의 설명과는 상충되는 말이 아닌가요? '일체는 무상하고, 나도 무상하므로 무아이다.'라고 이해해야 할까요? 아니면 '일체는 무상하고, 무상한 건 괴로움이지만, 나는 괴로움을 받는 고정된 주체가 아니기 때문에 무상한 것이 아니고, 이런 의미에서 무아이다.'이렇게 이해해야 할까요? 무상과 무아가 같은 맥락으로 쓰인 것이라고 이해했는데, 보충 교재의 무상한 것은 '나'가 아니다 라는 게 무상과 무아가 다른 맥락으로 쓰인 것 같아서 질문합니다.
3. 장자의 체도의 길 중 심재 부분을 보면 기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 기는 모든 존재의 일원적 근원이라고 보충자료에 적혀 있는데, 모든 존재의 근원은 도가 아닌가요? 기와 도의 분명한 차이가 뭘까요? 여기서의 기는 성리학에서 말하는 기와는 다른 개념인지도 궁금합니다.
4. 유식파에 관한 설명 중 식전변, 아뢰야식 부분에서 교수님의 칠판에는'아뢰야식의 함의'라고 되어 있고, 보충자료에는 '식전변의 함의'라고 되어 있습니다. 뭘로 봐야 할까요? 설명은 '인식의 상황에서 인식디는 대상이나 인식하는 주체, 분별과 분별되는 것은 모두 식이 변하여 나타난 결과물로서, 구체적으로 그러한 것들은 모두 심층의 아뢰야식의 현행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식전변인지 아뢰야식인지 궁금합니다.
감사합니다.
본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