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월 강의질문] 질문드립니다.
- 작성자
- 김나윤
- 등록일
- 2021년 06월 09일 20시 58분
- 조회수
- 154
- 첨부파일
-
안녕하세요, 교수님!
답변 감사합니다.
공부하다가 질문할 것이 생겨서 질문드립니다.
1. 듀이의 '도덕적 선'을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저는 다음과 같이 생각했습니다. '문제 상황-> 창조적 지성-> 문제 해결 방법(지식)-> 문제 해결 방법이 옳은 방법인지에 대한 평가-> 문제 해결 방법이 옳은 방법이라는 가치 판단' 이 과정을 통해서 '문제 해결 방법'이 현재의 구체적이고 특수한 악을 개선하는 데 쓸모 있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고, 결론적으로 문제 해결 방법=선이 된다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점들을 보았을 때 도덕적 선이란 '악을 제거하고자 하는 인간의 지성적 활동을 통해 발견되고 구성되는 문제 해결 방법'이라는 것은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저는 '올바른 선= 행위의 올바른 방향'으로 도덕적 선은 (그 상황 안에서 결론 지어진, 그래서 그 상황 안에서 고정되어 있는) 행위의 방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도덕적 문제 상황이.. ~한 상황에서 약을 훔쳐야 하는가?라는 상황이라면, 이 상황에서의 도덕적 선은 이 문제 상황을 해결하는 가장 올바른 방법인 (예를 들어) '~한 상황에서는 약을 훔쳐야 한다.'라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러면 행동이라는 점에서는 고정되어 있다고 보았는데요. 이러한 점에서 왜 '도덕적 선이란 행동을 통해 덜 좋은 상태에서 더 좋은 상태로 나아가는 것이다.'라는 문장과 '도덕적 선을 발견해 가는 과정은 행동을 통해 도덕적으로 성장하고 개량하고 진보해 나가는 과정이다.'라는 문장이 성립하는지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도덕적 선이란 '(과정을 의미하는 듯한)더 좋은 상태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더 좋은 상태로 나아가도록 하는 '행동''이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리고 도덕적 선을 발견해 가는 과정은 '행동을 통해' 도덕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이 아니라, '창조적 지성을 통해 올바른 행동을 파악함으로써' 도덕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이 아닌지요..? 더불어서 '좋은 사람이란 점점 더 선해지기 시작하는 사람'이 아니라 '도덕적 문제 상황에서 올바른 문제 해결 방법을 선택한 사람'이라고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ㅠㅠ...
2. 교재 344페이지의 '정적인 성과나 결과가 아니라 성장, 개량, 진보 과정이 중요해진다. 두 번 다시 변하지 않는 고정된 목적으로서의 건강이 아니라, 필요한 건강의 증진-이라는 계속적인 과정-이 목적이자 선이다.'라는 부분의 해석이 어렵습니다. 듀이가 목적은 문제 상황마다 변하는 것이고, 문제 상황은 다양하기 때문에, 정해진 목적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맞지만.. 정해진 목적의 예시로 '정적인 성과나 결과, 건강'을 드니까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정적인 성과나 결과, 예를 들어서 A+을 맞아야 한다는 정적인 성과나 결과를 성취하더라도 그 수준을 넘어서도록 성장하는 것이 중요하기에 앞의 문장을 말한 것일까요? 그런데 건강은 건강하면 끝이 아닌가요..ㅜㅜ 건강 부분에서 건강을 넘어서는 목적이 있을까요..?
3. 덕 교육론에서 근대 계몽주의의 인간관을 비판하는 부분에 '인간에 대한 목적론적 관점을 거부한다'라는 것이 있는데요. 사르트르와 칸트 기출 문제를 풀 적에, 사르트르와 달리 칸트는 인간의 본질을 인간성으로 본다는 것이 있었습니다. 저는 인간의 본질을 인간성으로 본다는 것은 즉 인간의 목적이 인간성의 실현이라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근대 계몽주의가 인간에 대한 목적론적 관점을 거부한다는 것은 옳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제가 놓친 부분이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4. 저번 주에 제가 질문했던 것 중 13번이 "불안의 제거 방법에서 왜 본래적 실존으로 정립할 때 불안이 제거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불안은 무한한 자유와 이 자유로 인해 자신이 만든 가능성이 과연 실현될까라는 중압감 때문에 생겨난 것이 아닌지요.. 본래적 실존은 양극 요소를 종합한 실존이고요. 본래적 실존으로 가면 자유와 중압감이 사라지는 것인가요?"였는데요, 이에 대한 교수님의 대답이 "키르케고르에 의하면, 본래적 실존 혹은 종교적 실존의 신앙은 미래에 대한 무지로 인해 생겨나는 불안을 제거하고, 행동을 통해 자신의 자유를 현실로 생성하는 힘입니다. 따라서" 이셨습니다. 본래적 실존이 된다면 내가 자유로이 선택한 것으로 인해 생겨난 가능성이 모두 해결되는 것일까요? 그렇기 때문에 자유로 인한 중압감이 없어지는 것일까요? 따라서 이후가 너무 궁금해 재질문드립니다.
5. 마지막 질문입니다. 스토아 이전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은 덕을 기능의 탁월한 발휘와 관련하여 이야기하는데요. 스토아는 왜 덕을 '이성의 탁월한 발휘'에서 나아가 '이성에 순응하는 성향'이라고 정의하는지 정말 궁금합니다. 다시 말해서 덕이 왜 '인간의 기능, 즉 이성의 탁월한 발휘'에 그치지 않고, '덕= 이성에 순응하는 성향'이라고 보는지 궁금합니다! 스토아에게 있어 '이성의 탁월한 발휘= 이성에 순응하는 것'인 걸까요?
저번 주에 많이 질문드렸는데 상세히 대답해주셔서 궁금증이 모두 풀렸습니다. 항상 정말 감사드립니다. 건강하세요!
본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