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강의질문] 키르케고르, 쇼펜하우어 질문
- 작성자
- 김병찬
- 등록일
- 2022년 04월 06일 13시 25분
- 조회수
- 204
- 첨부파일
-
질문 감사합니다. 질문하신 순서대로 답변드리겠습니다.
1. 299쪽 원문의 번역문에 오타는 없습니다. 그것에서 키르케고르가 심미적 실존을 ‘부동하는 실존’이라고 부른 이유는 심미적 실존이 부동의 인격성을 소유한 존재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키르케고르에 의하면, 심미적 실존은 다른 가치가 아니라 항상 새로운 쾌락의 가능성만을 추구하는 존재입니다. 즉, 그는 새로운 쾌락의 가능성 안에서 움직이지 않는 존재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심미적 실존은 부동하는 실존입니다.
2. 질문 내용 중 ‘의지란 모든 현상이 인식할 수 없는 것’이라는 어구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의도하신 바를 좀더 상세히 서술해 주시면 읽고 답변드리겠습니다.
▒▒▒▒▒▒ [양서영 회원님의 글] ▒▒▒▒▒▒
키르케고르
1. p299 윤리적 실존의 삶에는 유동성이 발견되지 않는다. 라고 하였는데 원문에 따르면 “윤리적 실존은 심미적 실존처럼 부동하는 실존이 아니고 사회적, 역사적, 시민적 실존으로서 가장 구체적인 자기다.” 라고 하였습니다. 즉 윤리적 실존은 유동성이 발견되지 않는다를 부동한다라고 이해했는데 부동하는 실존이 아니다라는 문장이 이해가지 않아 질문합니다.
--------------------------------------------------------
쇼펜하우어
2. 쇼펜하우어에게 의지의 세계는 물자체의 세계임과 동시에 의지란 모든 현상이 인식할 수 없는 것이 맞나요?
본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