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강의질문] 서양윤리 질문입니다.
- 작성자
- 김병찬
- 등록일
- 2022년 08월 31일 12시 37분
- 조회수
- 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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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감사합니다. 질문하신 순서대로 답변드리겠습니다.
1. 개념적으로 보면 ‘사랑’과 ‘소유’는 동일 개념이 아닙니다. 달리 말해서 전자는 후자의 실현을 위한 조건이기는 하나 둘 사이의 필연적 관계는 없습니다. 그런데 신에 대한 완전한 사랑과 신의 소유 사이의 필연적 관계를 형성시켜 주는 것이 신의 은총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관점에 의하면, 신이 인간에게 최고덕을 부여하는 것은 인간을 자신 안으로 받아들이는 행위, 달리 말해서 신과의 인격적 만남을 허용하는 행위입니다. 이로 인해 최고덕에 따라 활동하는 것과 신과의 인격적 만남을 통해 신이라는 최고선을 향유하는 것은 동일한 것이 됩니다. 요컨대 최고덕을 소유하고 있는 상태와 신의 소유하고 있는 상태는 같은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2. 스피노자의 논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어떤 대상에 대하여 타당한 관념을 소유한다는 것은 그것에 대한 제2종의 인식(2종지)과 제3종의 인식(3종지)을 갖는다는 말이다. (참고로 스피노자에 의하면, 모든 타당한 관념은 신 안에 포함되어 있으므로, 달리 말해서 그것은 신의 본질을 표현하는 것이므로, 타당한 관념을 소유한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신의 본질에 대한 타당한 인식을 갖는다는 말입니다.)
어떤 대상에 대해 제2종의 인식을 갖는다는 것은 공통 관념에 따라 그것을 인식한다는 것이다.
어떤 대상에 대해 제3종의 인식을 갖는다는 것은 그것의 궁극 원인인 신의 본성에 대한 인식에 근거하여 그것의 본성을 인식하는 것이다.
능동적 감정은 나의 정신이 그것에 대하여 타당한 관념을 소유하고 있는 감정이다.
따라서 능동적 감정이란 궁극적으로 신의 본성 및 그것의 변형태인 나의 본성의 필연성에 대한 인식에 근거하여 그것의 본성을 뚜렷하고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는 감정이다.
그리고 신의 본성 및 나의 본성은 능동적 감정의 타당한 원인이므로, 능동적 감정이란 그것의 타당한 원인인 나의 본성을 통해 뚜렷하고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는 감정이다.
▒▒▒▒▒▒ [장다은 회원님의 글] ▒▒▒▒▒▒
1. 아우구스티누스
아우구스티누스의 덕과 행복의 관계가 이렇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행복: 신을 사랑하고 실제로 신을 소유하고 있는 상태
-최고의 덕: 신에 대한 완전한 사랑 (신의 은총의 산물)
-신의 소유와 신에 대한 완전한 사랑은 동일한 개념이 아님
-그러나 인간은 신의 은총을 통해 최고의 덕을 소유함으로써 인간은 신을 소유하게 됨, 즉 신의 은총을 매개로 하여 사랑과 소유가 일치하게 됨
그런데 제 생각에는 신의 은총의 산물인 최고의 덕이 행복과 동일한 개념이 아니었는데, 왜 갑자기 신의 은총의 산물인 최고의 덕을 소유하게 되면 신의 소유와 일치하게 되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2. 스피노자
스피노자의 능동적 감정은 '그것의 타당한 원인인 나의 본성을 통해 뚜렷하고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는 감정이다. 즉, 능동적 감정은 나의 정신이 그것에 대한 타당한 관념을 소유하고 있는 감정이다.' 라고 되어있습니다.
그렇다면 능동적 감정은 ①나의 본성이 감정의 타당한 원인인 경우 ②내가 그 감정에 대해 타당한 관념을 소유하고 있는 경우라고 할 수 있는데, ①나의 본성이 감정의 타당한 원인인 경우란 감정이 나의 본성을 통해 뚜렷하고 명확하게 인식될 수 있는 경우이기 때문에, ②내가 그 감정에 대해 타당한 관념을 소유하고 있는 경우와 동일한 의미이다 라고 해석하는게 맞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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