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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내용질문

[1~2월 강의질문]  아리스토텔레스 질문드립니다.

작성자
김병찬
등록일
2023년 03월 21일 21시 00분
조회수
442
첨부파일
질문 감사합니다. 질문하신 순서대로 답변드리겠습니다. 1. 합리적 선택은 특정 상황에서 욕구하는 목적 실현을 위한 최선의 수단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욕구하는 목적’은 좋음(선)이고, ‘최선의 수단’은 행위입니다. 따라서 합리적 선택은 본질적으로 특정 상황에서 욕구하는 목적(좋음, 선)의 실현을 위한 최선의 행위를 합리적으로 숙고하여 판단하는 것입니다. 결국 합리적으로 선택된 것은 이성의 숙고 활동의 결과물입니다. 이처럼 합리적 선택은 본질적으로 이성의 숙고 활동이지만 그 과정에는 반드시 목적에 대한 욕구가 포함됩니다. 그리고 목적에 대한 욕구는 욕구하는 부분의 작용의 산물이고, 행위의 선택 혹은 판단은 이성적인 부분의 작용의 산물입니다. 2. 합리적 선택 과정에 목적에 대한 욕구라는 계기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부덕한 사람의 합리적 선택이 존재하게 됩니다. 부덕한 사람의 합리적 선택이 지닌 본질적인 문제점은 나쁨(악)을 좋은 것으로 착각하여 그것을 욕구한다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부덕한 사람의 합리적 선택뿐만 아니라 자제력 없는 사람의 합리적 선택도 있습니다. 자제력 없는 사람의 합리적 선택 혹은 행위 판단 그 자체에는 오류가 없습니다. 문제는 그의 합리적 선택이 행위를 이끌어 내는 원인 혹은 동기로 작용하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합리적 선택이 행위의 동기가 되기 위해서는 선택된 것으로 좋은 것으로 여겨 욕구해야 합니다.(이는 욕구하는 부분의 작용에 해당합니다.) 이럴 때에만 합리적 선택은 엄밀한 의미에서 ‘신실한 합리적 선택’이 됩니다. 자제력 없는 사람은 자제력 없음으로 인해 그가 내린 합리적 선택이 아니라 감정을 동기로 하여 행위하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원천적으로 제거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품성의 탁월성과 실천적 지혜를 갖추는 것입니다. 품성의 탁월성을 갖춘 사람은 어떠한 상황에서 올바른 목적으로 열망하고, 올바른 이성이 내린 올바른 판단을 좋은 것으로 여겨 욕구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실천적 지혜를 지닌 사람은 항상 좋은 목적에만 관여하여 그것을 실현하는 최선의 방법을 올바르게 판단하는 사람입니다. 실천적 지혜의 실천력은 그것이 품성의 탁월성과 통일되어 있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판단대로 행동하고자 하는 욕구와 관여하는 덕은 품성의 탁월성입니다. 그런데 품성의 탁월성은 언제나 실천적 지혜를 갖춘 올바른 이성의 명령에 따라 욕구하도록 하는 탁월성입니다. 따라서 실천적 지혜를 지닌 사람이 자신의 판단대로 행동하지 않는 경우는 없으며, 이를 소유한 올바른 이성의 판단은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행위를 산출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실천적 지혜를 ‘행위를 산출하는 이성의 동반한 참된 실천적 품성상태’라 정의하는 것입니다. 3.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은 덕이 아니라 덕에 따른 활동”이라고 주장합니다. 이 주장의 정당화 논리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행복은 덕에 따른 활동(철학적 지혜에 따른 관조적 활동)이고, 덕에 따른 활동이 행복이다. 2. 개념상 덕은 활동 능력이므로, 덕의 소유는 그것에 따른 활동 능력의 소유를 의미한다. 3. 덕을 소유하면 필연적으로 그것에 따라 활동하게 되는가? 달리 말해서 덕의 소유는 그것에 따른 활동의 필요충분조건인가? 4. 현실적으로 덕을 소유하면서도 “일생 동안 잠을 자거나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경우”가 존재하며, 덕을 소유하면서도 “불운 등과 같은 외부의 원인에 의해 그것에 따른 활동이 방해받는 경우”가 실제로 존재한다. 5. 덕에 따른 활동이 외부의 원인에 의해 방해받지 않으려면, 방해하는 원인을 제거해야 한다. 이때 제거는 제거되어야 할 요인의 반대되는 것의 소유를 의미한다. 따라서 행복이 덕에 따른 활동이라면, 덕의 소유 그 자체는 행복의 필요충분조건이 아니다. 달리 말해서 덕을 소유하고 있는 상태 그 자체를 행복한 상태의 필요충분조건으로 보는 전형적인 덕복일치론은 잘못된 이론이다. 위 논리에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다시 질문해 주세요. 성실히 답변드리겠습니다. ▒▒▒▒▒▒ [정병선 회원님의 글] ▒▒▒▒▒▒ 합리적 선택 과정은 목적을 지향하는 욕구를 계기로,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수단을 선택하는 이성의 숙고 작용과 판단한 대로 행위하고자 하는 욕구가 결합한 심리적 과정이라고 하시는 걸 질문에서 보았습니다. 1. 그렇다면 합리적 선택은 이성적인 부분과 욕구하는 부분이 모두 관여하여 결정을 내리는 과정이고 계기가 되는 목적을 지향하는 욕구는 욕구적인 부분이, 이성의 작용은 이성적인 부분이, 다시 판단한 대로 행위하고자 하는 욕구는 욕구적인 부분이 관여하는 과정이라고 보아도 되는 건가요? 2. 그리고 올바른 합리적 선택이란 계기에 품성적 탁월함이 관계해야 하고 참인 수단을 판별하는 것을 실천적 지혜가 관여한다면 판단한 대로 행위하고자 하는 욕구는 품성적 탁월함의 영향으로 생기는 건가요, 실천적 지혜의 영향으로 생기는 건가요? 그냥 이성적인 부분 욕구하는 부분 나눠서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실천적 지혜에 대해 설명을 들을 때 옳은 목적을 위한 수단을 판단하는 것뿐 아니라 이에 따른 행위를 산출하는 것 또한 실천적 지혜라고 들었는데 어떻게 이성적인 부분의 탁월성인 실천적 지혜가 수단을 판단하는 것만이 아니라 행위를 산출해 낼 수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목적을 위해 무엇이 옳은 행위인지 판단을 내렸다면 그에 따르고자 만드는 것은 행복을 원하기 때문 아닌가요?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엔 판단은 실천적 지혜가 내리고 이를 실천하게끔 만드는 것은 품성적 탁월함이라고밖에 생각이 안 되어서 행위를 산출해내는 것도 실천적 지혜가 한다는 말의 뜻이 궁금합니다. 또, 2017년 박*선님 답변글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덕복일치 입장에 대해서 탁월성을 방해하는 현실적인 요인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에 따라 활동하지 못하는 경우가 존재하고 그렇기에 행복은 탁월성이 아니라 탁월성에 따르는 행동이라 강조했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관조적 활동인 행복이 그런 요소가 가장 적은 활동이어야 한다는 게 행복이 덕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오는 이야기는 아니지 않나요? 덕도 활동이며 행복도 방해요소가 가장 적은 활동이면 행복은 가장 방해요소가 적은 덕, 가장 완벽한 덕이 되는 것이라 보아야 하지 않나요? 3. 저 설명에서 행복은 철학적 지혜의 소유와 더불어 외적으로 좋은 것들도 갖추고 있는 삶이라는 점에서 덕복일치가 아니라는 결론이 왜 나오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위의 답변을 보면 덕 또한 방해요소가 있을 수 있고 행복 또한 최소한의 방해요소가 명백히 존재하며 이것을 해소해야 제대로 된 활동이 가능한 것이라고 해석됩니다. 그런데 이 차이로 행복은 외적으로 좋은 것들도 갖추고 있는 삶이라는 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적 입장은 엄격한 의미에서의 덕복일치설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위의 답변대로면 덕 또한 마찬가지로 현실적인 요인들의 방해가 있을 수 있고, 그렇다면 이를 해소하기 위해선 현실적인 요인들을 해소하기 위해 외적 요소가 필요해지지 않습니까? 탁월성 또한 방해 요소가 해소되어야만 잘 기능하는 것으로 보게 되면 행복의 경우 외적 요소가 필요하기 때문에 행복은 탁월성이 아니라 탁월성에 따르는 행동이라는 말이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외적 요소를 갖추어야 가능하다는 것이 어떻게 행복이 탁월성이 아닌 탁월성에 따르는 행동임을 뒷받치는 근거가 되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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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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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선의 댓글

정병선 작성일 2023-03-21 23:50:35

실천적 지혜와 품성적 덕은 떨어질 수 없는 관계라고 봤으면서도 작용에 있어서는 떨어져서 생각했기에 생긴 착각과 덕이 활동이라는 걸 그대로 받아들여서 생긴 오류였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