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강의질문] 아리스토텔레스 질문드립니다.
- 작성자
- 정병선
- 등록일
- 2023년 03월 22일 00시 11분
- 조회수
- 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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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숙고적 욕구는 합리적 선택에 포함되어 있는 게 아닌가요? 보충자료에는 합리적 선택 설명에 숙고적 욕구도 합리적 선택에 포함되어야 합리적 선택이라고 보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자제력 없는 사람의 합리적 선택은 합리적 판단까지는 했지만 그 결과를 욕구하는 선택까지는 가지못했는데 그래도 그들도 합리적 선택은 했고 그에 따른 결과를 욕구하지 않았다고 설명하면, 숙고적 욕구는 합리적 선택에 포함된 게 아닌 것이고
올바른 행위가 되려면 '합리적 선택 후 숙고적 욕구를 해야 한다.'와 같이 문장지어야 하나요?
만약 숙고적 욕구가 합리적 선택에 포함되어 있지 않고 그 다음에 행해지는 것이라면 이 경우는 또 숙고하여 나온 결과를 추구하지 않아도 거기까지로 올바른 합리적 선택을 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게 되어 버리니
자제력 없는 사람의 합리적 선택에는 올바른 판단에 대한 숙고적 욕구가 없음에도 합리적 선택이라 부르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2. 그리고 이전에 했던 질문에서 편한 이해를 위해 몇 가지 문장을 만들어 봤는데 문장에 오류가 없을지 궁금합니다.
*실천적 지혜에는 반드시 품성적 덕이 동반되니 품성적 덕이 실천적 지혜의 판단대로 욕구하기에 실천적 지혜에는 판단에 따른 행위를 산출하는 실천성이 생기는 것이다.
*품성적 덕이 감정과 행위의 선택과 관련되었다고해서 품성적 덕이 '선택'을 한다는 것이 아니다. 선택은 오직 이성이 하는 것이고, 실천적 지혜가 판단한 중용을 욕구해서 이성의 선택을 이끌기에 관련되었다는 것이다.
*품성적 덕은 욕구와 관련되었기에 '언제나'라는 단어를 써도 되지만, 실천적 지혜는 행위의 실천과 관련되어 있기에 '언제나' 그대로 행위를 산출한다고 하면 안 된다. 실천적 지혜 또한 현실과 관련되면 외부의 원인에 의해 활동이 방해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문장이 특히나 쓰면서도 궁금했는데, 욕구와 관련하여 옳은 목적과 감정과 행동을 바랄 뿐이라면 '언제나' 라는 단어를 쓸 수 있다 생각했습니다. 현실의 행위로 나타나면 그대로 행위할 수 없게 만드는 장애물이 많겠지만 마음 속에서 그저 바라고 욕구할 뿐이라면 '언제나' 선과 관련된 것을 열망할 수 있는 것일테고, 이렇게 이해하면서 관조적 활동과의 차이에 대해서 궁금해 졌습니다.
품성적 덕 자체로는 완전하게 기능하지만 품성적 덕을 위해서 실천적 지혜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하고, 실천적 지혜는 행위의 선택과 관련되어 현실적인 수반물이 필요해지니 이 관점에서 품성적 덕이 행복보다 실천적 지혜라는 수반물이 필요해져서 이 점에서 더 낮은 위계인 것이라고 보면 되는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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