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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내용질문

[1~2월 강의질문]  아리스토텔레스 질문드립니다.

작성자
김병찬
등록일
2023년 03월 27일 20시 55분
조회수
630
첨부파일
질문 감사합니다. 질문하신 순서대로 답변드리겠습니다. 1.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에서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자제력 없음이 악덕이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한편(자제력 없는 사람)은 합리적 선택에 어긋나는 것이고, 다른 현편(무절제라는 악덕을 소유한 사람)은 합리적 선택에 따르는 것이니까.” 이처럼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제력 없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 그것에 적합한 합리적 선택을 한 사람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합리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 달린 것들에 대한 숙고와 욕구의 대상이므로, 합리적 선택 또한 우리에게 달린 것들에 대한 숙고적 욕구일 것이다. 우리는 숙고를 통해 결정한 후 그 숙고에 따라 욕구하는 것이다.” 이 주장에 따르면, 합리적 선택은 숙고적 욕구이고, 이때 욕구는 숙고하여 선택한 것에 대한 욕구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자제력 없는 사람은 합리적 선택을 한 사람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는 주장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자제력 없는 사람은 숙고하여 선택한 것을 욕구하는 사람이 아니니까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단서가 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을 보겠습니다. “사유 그 자체는 아무것도 움직이지 못하지만 목적을 지향하는 실천적인 사유는 그렇지 않다. ….중략… 단적으로 목적인 것은 행위에 의해 성취될 수 있는 것뿐이다. 잘 행위한다는 것이 목적이며, 욕구는 이 목적을 향하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합리적 선택이란 욕구적 지성이거나 사유적 욕구인 것이며, 인간이 바로 그러한 원리이다.” 이 주장에 의하면 합리적 선택은 욕구적 지성 혹은 사유적 욕구입니다. 이때 욕구는 목적(잘 행위하는 것, 잘 사는 것 혹은 좋은 삶)에 대한 욕구입니다. 따라서 자제력 없는 사람의 합리적 숙고를 긍정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숙고하여 선택한 것에 대한 욕구의 존재 여부와는 상관없이 목적에 대한 욕구에 기반하여 이루어지는 행위의 선택을 합리적 선택의 개념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2. “실천적 지혜에는 반드시 품성적 덕이 동반되니 품성적 덕이 실천적 지혜의 판단대로 욕구하기에 실천적 지혜에는 판단에 따른 행위를 산출하는 실천성이 생기는 것이다.”: 실천적 지혜는 실천을 산출하는 탁월성입니다. 달리 말해서 실천적 지혜를 지닌 올바른 이성이 내린 판단은 그에 따른 행위를 이끌어내는 힘을 지닙니다. 이 힘은 올바른 이성 그 자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목적을 지향하는 욕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해당 문장에 오류는 없어 보입니다. “품성적 덕이 감정과 행위의 선택과 관련되었다고 해서 품성적 덕이 '선택'을 한다는 것이 아니다. 선택은 오직 이성이 하는 것이고, 실천적 지혜가 판단한 중용을 욕구해서 이성의 선택을 이끌기에 관련되었다는 것이다.”: 품성의 탁월성은 실천적 지혜를 지닌 올바른 이성을 동반하는 탁월성이지 그 자체 올바른 이성은 아닙니다. 지나침과 모자람의 중간을 선택하는 것은 이성이고, 품성의 탁월성은 항상 좋음을 목적으로 열망하면서 올바른 이성의 선택을 욕구하도록 해 주는 품성상태입니다. “중용을 욕구해서”라는 표현은 오류입니다. 왜냐하면 중용은 품성의 탁월성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용기도 중용이고, 절제도 중용입니다. 품성의 탁월성을 지닌 사람이 욕구하는 것은 좋은 목적이고, 직면한 상황에서 그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최선의 수단으로 이성이 판단한 올바른 행동입니다. “품성적 덕은 욕구와 관련되었기에 '언제나'라는 단어를 써도 되지만, 실천적 지혜는 행위의 실천과 관련되어 있기에 '언제나' 그대로 행위를 산출한다고 하면 안 된다. 실천적 지혜 또한 현실과 관련되면 외부의 원인에 의해 활동이 방해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품성의 탁월성과 실천적 지혜는 존재하기 위해 각각 상대방을 필요로 합니다. 그리고 품성의 탁월성과 실천적 지혜에 따른 활동은 수많은 외적인 것들을 필요로 합니다. 예를 들어 빚을 갚기 위해 돈을 필요로 하고, 절제 있는 사람은 절제를 발휘할 기회를 필요로 합니다. 이처럼 품성의 탁월성과 실천적 지혜는 자족적이지 않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철학적 지혜에 따른 관조적 활동이 품성의 탁월성과 실천적 지혜에 따른 활동보다 우월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철학적 지혜에 따른 관조적 활동 또한 외적인 것을 필요로 하는 것은 맞지만, 후자의 탁월성과 비교해 보았을 때 극히 적은 양만을 필요로 한다. 둘째, 철학적 지혜에 따른 관조적 활동은 신적인 것을 대상으로 한 신적인 활동인 반면, 후자의 활동은 인간적인 것을 대상으로 한 인간적인 활동이다. 신적인 것이 인간적인 것보다 가치에 있어서 우월하므로, 전자의 활동이 후자의 활동보다 우월하다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 [정병선 회원님의 글] ▒▒▒▒▒▒ 1. 숙고적 욕구는 합리적 선택에 포함되어 있는 게 아닌가요? 보충자료에는 합리적 선택 설명에 숙고적 욕구도 합리적 선택에 포함되어야 합리적 선택이라고 보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자제력 없는 사람의 합리적 선택은 합리적 판단까지는 했지만 그 결과를 욕구하는 선택까지는 가지못했는데 그래도 그들도 합리적 선택은 했고 그에 따른 결과를 욕구하지 않았다고 설명하면, 숙고적 욕구는 합리적 선택에 포함된 게 아닌 것이고 올바른 행위가 되려면 '합리적 선택 후 숙고적 욕구를 해야 한다.'와 같이 문장지어야 하나요? 만약 숙고적 욕구가 합리적 선택에 포함되어 있지 않고 그 다음에 행해지는 것이라면 이 경우는 또 숙고하여 나온 결과를 추구하지 않아도 거기까지로 올바른 합리적 선택을 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게 되어 버리니 자제력 없는 사람의 합리적 선택에는 올바른 판단에 대한 숙고적 욕구가 없음에도 합리적 선택이라 부르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2. 그리고 이전에 했던 질문에서 편한 이해를 위해 몇 가지 문장을 만들어 봤는데 문장에 오류가 없을지 궁금합니다. *실천적 지혜에는 반드시 품성적 덕이 동반되니 품성적 덕이 실천적 지혜의 판단대로 욕구하기에 실천적 지혜에는 판단에 따른 행위를 산출하는 실천성이 생기는 것이다. *품성적 덕이 감정과 행위의 선택과 관련되었다고해서 품성적 덕이 '선택'을 한다는 것이 아니다. 선택은 오직 이성이 하는 것이고, 실천적 지혜가 판단한 중용을 욕구해서 이성의 선택을 이끌기에 관련되었다는 것이다. *품성적 덕은 욕구와 관련되었기에 '언제나'라는 단어를 써도 되지만, 실천적 지혜는 행위의 실천과 관련되어 있기에 '언제나' 그대로 행위를 산출한다고 하면 안 된다. 실천적 지혜 또한 현실과 관련되면 외부의 원인에 의해 활동이 방해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문장이 특히나 쓰면서도 궁금했는데, 욕구와 관련하여 옳은 목적과 감정과 행동을 바랄 뿐이라면 '언제나' 라는 단어를 쓸 수 있다 생각했습니다. 현실의 행위로 나타나면 그대로 행위할 수 없게 만드는 장애물이 많겠지만 마음 속에서 그저 바라고 욕구할 뿐이라면 '언제나' 선과 관련된 것을 열망할 수 있는 것일테고, 이렇게 이해하면서 관조적 활동과의 차이에 대해서 궁금해 졌습니다. 품성적 덕 자체로는 완전하게 기능하지만 품성적 덕을 위해서 실천적 지혜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하고, 실천적 지혜는 행위의 선택과 관련되어 현실적인 수반물이 필요해지니 이 관점에서 품성적 덕이 행복보다 실천적 지혜라는 수반물이 필요해져서 이 점에서 더 낮은 위계인 것이라고 보면 되는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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