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강의질문] 교수님 아리스토텔레스 질문드립니다.
- 작성자
- 김병찬
- 등록일
- 2015년 07월 09일 12시 59분
- 조회수
- 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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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감사합니다. 질문하신 순서대로 답변드리겠습니다.
1. 영혼의 구분과 관련하여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을 병렬적으로 비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심리학 혹은 영혼론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세밀하고 구체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말씀드리자면, 플라톤의 기개적인 부분과 욕구하는 부분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욕구적 부분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2. 이성을 가진 부분을 두 부분으로 나누는 기준은 이성이 관계하는 대상(그 원리가 다르게 있을 수 없는 것 / 그 원리가 다르게 있을 수 있는 것)과 그러한 것을 대상으로 하는 이성의 기능 혹은 작용의 성격(사유 혹은 인식 / 숙고)입니다.
3.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선천적인 자연적 탁월성은 지성 혹은 실천적 지혜(올바른 이성)에 의해 인도되지 않으면 엄밀한 의미에서의 성품의 탁월성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강의 시간에 말씀드렸듯이 이때 지성 혹은 실천적 지혜는 자연적 탁월성만을 지니고 있을 뿐 성품의 탁월성을 지니지 못한 사람(보통 어린 아동이겠지요)이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의 소유자는 덕 있는 성인이거나 좋은 국가의 법률입니다. 결국 지성 혹은 실천적 지혜에 의해 인도된다는 것은 덕 있는 성인이거나 법률에 의한 훈육을 의미하며, 그러한 훈육에 의해서 자연적 탁월성은 엄밀한 의미의 탁월성으로 완성되는 것입니다.
4. 그 자체 목적을 선택할 수 없는 이성은 이성적으로 헤아리는 부분에서 작용하는 이성, 즉 실천이성이지 모든 종류의 이성을 지칭하는 것이 아닙니다.
5.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보편적인 것에 대한 무지란 행위 선택 혹은 행위 판단에 전제로 사용되는 개별적 정보에 대한 무지가 아니라, 인간 행위의 목적인 전체적으로 잘 삶, 잘 행위함과 관련된 것에 대한 무지입니다. 이러한 것에 대해 무지한 사람은 결국 목적 그 자체와 그 목적을 실현하기 수단을 숙고할 수 있는 능력을 결여한 사람으로서, 악덕의 책임이 악덕 주체에 있듯이, 그러한 능력의 결여의 책임은 그것을 가지지 못한 사람에게 있습니다. 따라서 보편적인 것에 대한 무지는 비자발적 행위의 원인이 되는 무지가 될 수 없습니다. 참고로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인간 세계 혹은 사회를 떠나 있는 존재는 신이거나 짐승입니다. 달리 말해서 사회에서 벗어나 있는 개인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말씀하신 가상적 상황은 적어도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에서는 있을 없는 상황입니다.
6. 이 문제와 관련하여 학자들 사이에 상이한 견해가 존재하기 때문에, 제가 단정하여 말씀드릴 수 없는 점 양해바랍니다.
7. 즐거움은 모든 종류의 활동의 산물이기 때문에, 즐거움의 종류 또한 여럿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아리스토텔레스는 중요한 두 가지 활동을 제시하는 데, 본성을 완성해 나가는 활동과 본성이 충족되었을 때의 활동, 달리 말해서 탁월성을 완성해 나가는 과정에서 행해지는 활동과 탁월성이 완성되어 그것에 따르는 활동이 그것입니다. 두 경우는 모두 활동이므로, 각각에는 각각의 즐거움이 수반됩니다. 그런데 후자의 활동에 수반되는 활동은 활동을 완성하는 데 기여할 수 없습니다. 이미 완성된 활동에 수반되는 즐거움이니까요. 이와는 달리 전자의 활동에 수반되는 활동은 그 활동을 완성시키는 데 기여합니다.
▒▒▒▒▒▒ [정복경 회원님의 글] ▒▒▒▒▒▒
1.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의 차이에 관한 질문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영혼의 부분을 이성, 욕망, 식물적인 것이라고하며 플라톤은 이성 기개 욕망으로 정의하는 것 같습니다. 이 때 아리스토텔레스가 욕망이라고 했던 부분과 플라톤의 욕망의 부분이 일치하는 것인지, 그렇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기개적인 영혼의 부분을 자신이 생각한 영혼의 범주 어디에 넣었는지 궁금합니다.
2. 이성을 가진 부분은 자체에 이성을 가진 부분과 이성적으로 헤아릴 수 있는 부분으로 나누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때 기예나 실천적 지혜가 이성적으로 헤아릴 수 있는 부분에 포함되는 이유는 이 두가지가 행위를 전제하고 있기 때문인가요?
3. 자연적 탁월성이 실천적 지혜로 인하여 일관성을 부여받아 성품의 탁월성이 된다는 교재의 설명이 잘와닿지가 않습니다. 실천적 지혜는 목적에 대한 수단일 뿐인데 어떻게 일관성을 제공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4. 이성은 그 자체로 목적을 선택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인간의 형상인이 그 자체로 이성의 발휘를 목적으로 하는 것 아닌지 궁금합니다. 만약 이성이 목적이 없다면 그 자체에 이성을 가진 부분, 철학적 지혜와 같은 부분들은 아무런 방향성도 없이 그저 세계에 대해서 사고할 뿐인것인지, 그래서 그것을 관조라고 하는지 궁금합니다.
5. 보편적인 것에 대한 무지가 왜 악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태어나서부터 인간 세계에 격리되어 보편적인 도덕 지식에 대한 완전한 무지 상태가 되었을 때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사람에 대해서 악하다고 말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6. 소크라테스는 악행의 비자발성을 이야기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악의 자발성이 가능하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플라톤은 어떤입장을 취하는지 궁금합니다.
7. 교재에 즐거움이란 완전한 기능이 실현될 때 느끼는 감정이라고 적혀있습니다. 그렇다면 즐거움을 느낄 때 더 열심히 한다는 교재의 내용과 상충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사람이 자신의 완전한 기능의 작용에 즐거움을 느낀다면 그것은 이미 완전하게 작동하고 있으므로 더 열심히 하여 그것을 발전시킬 가능성은 없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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