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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내용질문

[1~2월 강의질문]  키르케고르, 야스퍼스, 사르트르 질문입니다

작성자
김병찬
등록일
2023년 07월 01일 18시 58분
조회수
282
첨부파일
질문 감사합니다. 1. 신 앞에서 죄인인 자기 자신에 대해 절망하는 사람은 종교적 실존이 아니라 윤리적 실존입니다. 2. 기독교적 신앙은 본질적으로 무한하고 보편적이며 영원불변적 존재인 신이 인간을 죄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유한한 인간이 되었다는 사실에 대한 믿음입니다. 신이 인간이 되었다는 것, 즉 무한이 유한이 되었다는 것은 합리적인 관점에서 보면 역설입니다. 신앙은 이러한 역설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3. 세 유형의 절망은 심미적 실존과 윤리적 실존 모두에게서 나타나는 유형의 절망입니다. 심미적 실존과 윤리적 실존 중에는 절망을 알지 못하는 사람과 절망을 아는 사람이 있습니다. 절망을 아는 사람들 중에서는 약한 자아로 인해 실존 과제를 회피하는 사람이 있고, 허구적 자기를 강화하고 그것에 매달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요컨대 세 종류의 절망은 각각 어떤 실존 단계에 대응하는 것이 아닙니다. 4. 실존과의 만남은 실존과의 투쟁(=실존과의 사귐)을 위한 출발점입니다. 5. 네. 6. 자기기만(불성실)은 ‘거짓’을 통해 자유와 연동된 책임감에서 생겨나는 불안을 제거하기 위한 방책입니다. 그런데 자기기만하는 사람은 자신이 기만하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기 때문에, 자기기만은 결코 인간의 불안을 근원적으로 제거할 수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불안을 피하기 위해 자기기만하는 사람은 여전히 불안 속에 있는 사람입니다. 말씀하신 구절은 이러한 의미를 지닌 구절입니다. ▒▒▒▒▒▒ [이하늘 회원님의 글] ▒▒▒▒▒▒ 안녕하세요 키르케고르, 야스퍼스 질문 있습니다! 1. 신앞에서 죄인인 자기 자신에 대해 절망하고 그러한 절망을 통해 참된 자기를 회복할 수 있다고 책에 나와 있는데, 종교적 실존 단계에서는 절망이 없지 않나요..? 어떻게 신 앞에서 절망이 가능한 것인가요? 2. 키르케고르에게 신앙이 왜 역설인건지 궁금합니다! 3. 295페이지에서 절망의 유형이 3가지(집단의 절망, 약함의 절망, 강함의 절망)로 분류되어 있는데, 그렇다먄 심미적, 윤리적 실존 단계의 절망이 각각 어떤 유형의 절망에 해당하는건가요? 4. 야스퍼스의 투쟁의 한계상황에서 실존을 위한 투쟁=실존과의 만남=실존과의 사귐 이 세 가지가 다 똑같다고 봐도 되나요?? 아니면 엄연히 다른 개념인 건가요?? 5. p.321에서 한계상황에서 현존재는 두 가지 가능성인 무에로의 길과 본래적 존재로의 길 앞에 서게 된다는데, 이 페이지에 나와있는 설명은 무에로의 길에 대한 것이 아니라 본래적 존재로의 길에 대한 설명인거 맞나요? 한계상황에 직면해서 모든 것이 무의미함을 느끼고 현존재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무에로의 길이고, 모든 것에 무의미함을 느끼지만 끊임없는 비약을 시도하는 것이 본래적 존재로의 길이라고 하면 되나요? 6. 328페이지 원문 맨 밑줄에서 [‘불안을 피하기 위해 불안으로 있는 한’ 이 무화적 능력은 자멸한다. ]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질문에 항상 정성껏 답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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