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강의질문] 질문드립니다
- 작성자
- 김병찬
- 등록일
- 2023년 10월 04일 12시 13분
- 조회수
- 536
- 첨부파일
-
질문 감사합니다. 질문하신 순서대로 답변드리겠습니다.
<키르케고르>
1. ‘자기 자신과 관계하는 관계’, 즉 ‘양극 요소의 종합으로서의 인간과 자기 자신의 관계’가 참된 자기의 정의입니다. 이 정의에서 참된 자기는 종교적 실존을 일컫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정의된 참된 자기의 실현 조건은 신과의 인격적 관계(신앙의 관계)입니다. 달리 말해서 신과의 인격적 관계가 없이는 양극 요소의 종합도 불가능하고, 그래서 자기 자신과 관계하는 관계도 불가능합니다. 심미적 실존에서 윤리적 실존을 거쳐 종교적 실존으로 이행 과정은 결국 자기 힘으로 종합을 시도했던 인간이 자신의 무능력 앞에서 절망하고, 그러한 절망을 계기로 하여 신과 인격적 관계를 맺음으로써 참된 자기를 실현하는 과정입니다.
“양극요소의 종합을 스스로의 힘으로 할 수 없으면 양극요소의 종합이라고 정의되는 ①인간 개념 자체가 처음에 존재할 수 없는 것 아닌가요? 신과의 관계가 먼저 선행되고 그를 통해 가능한 것이 양극요소의 종합이니까 신과의 관계를 통해 인간이 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②인간은 신과의 인격적 관계를 통해 참된 자기가 된다라고 하는데, 신과의 인격적 관계를 통해 양극요소의 종합이 일어나고 이 때 비로소 양극요소의 종합인 인간이라는 개념을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신과의 인격적 관계를 통해 참된 자기가 된다라는 말이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1은 참된 자기의 정의에서 사용된 특수한 개념이고, ○2는 개인들을 지칭하는 일반적 개념입니다. 어색하게 느껴지신다면 ○2를 ‘개인들’로 바꿔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하이데거>
현존재가 불안해하는 이유가 세계-내-존재-가능성인데, 세계-내-존재-가능성의의 의미가 정확히 무엇인가요?
2-1. 아닙니다. 세계-내-존재란 현존재의 존재 구조를 지시하는 개념입니다. 즉 현존재는 세계-내-존재입니다.
2-2. 현존재는 세계-내-존재-가능성 때문에 불안해 합니다. 세계-내-존재-가능성 때문에 불안해 한다는 말은 자기 자신이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단독성을 지닌 개별자라는 사실 때문에 불안해 한다는 말입니다. 자기 자신이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단독성을 지닌 개별자라는 사실 때문에 불안해 한다는 것은 실존 가능성 때문에 불안해 한다는 말입니다.
3. 실존은 가능성이라고 했을 때의 ‘실존 가능성’은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선택하고, 기투하는 현존재의 성격을 나타내는 개념입니다. 반면에 ‘죽음은 현존재가 더 이상 현존재일 수 없는 최후의 가능성’에서 ‘가능성’은 ‘할 수 있음’ 혹은 ‘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개념입니다.
<현대 공리주의 - 무어>
4. 윤리적 쾌락주의에 의하면, 선이란 쾌락이지, 쾌락을 가져다 주는 성질이 아닙니다. 쾌락을 가져다 주는 성질은 선한 것입니다. 즉, 어떤 것이 선 그 자체인 쾌락을 가져다 주면, 그것은 선한 것입니다. 무어의 입장에서 이는 자연주의 오류입니다. 왜냐하면 정의할 수 없는 단순 개념인 선을 어떤 것을 원인으로 하여 생겨나는 심리적 느낌인 쾌락으로 정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긍정 심리학>
5. 인격 강점입니다.
<나딩스>
6. 배려하고 배려 받았던 최상의 순간에 대한 기억은 자연적 배려의 기억입니다.
<플라톤>
7. 선의 이데아를 포함하여 이데아의 전체적인 성격에 대해 말하면, 이데아는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도덕적 가치의 근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도덕적 가치란 결국 ‘선’이므로,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러한 도덕적 가치의 근원은 이데아들 중 최상의 이데아인 선의 이데아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
8. 아래 4794번의 답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9. 실천적 지혜를 지닌 올바른 이성이 선택하는 행위의 목적은 좋음(선)입니다. 그런데 이 좋음은 행위의 외부에 존재하는 행위 그 자체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어떤 좋음이 아니라, 행위에 내재하는 좋음입니다. 요컨대 행위 그 자체가 좋은 것입니다. 따라서 행위의 목적은 어떤 외적인 좋음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좋은 것은 행위를 잘 하는 것입니다.
10. “품성의 탁월성은 우리가 바라보는 목표를 올곧게 해 준다.”에서 ‘목표’는 인간의 최고선인 행복이 아니라, 특수한 문제 상황에서 행해져야 할 행동의 목표입니다. 품성의 탁월성은 그러한 목표를 열망하여 확립하는 탁월성이다. 그러고 행동의 목표는 본성적으로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에게 참으로 좋은 것이어야 하므로, 품성의 탁월성은 인간에게 참으로 좋은 좋은 행동 목표를 열망하고 확립하는 탁월성입니다.
▒▒▒▒▒▒ [한동현 회원님의 글] ▒▒▒▒▒▒
안녕하세요. 질문드립니다.
<키르케고르>
1. 제가 이해한 바는 아래와 같은데, 이 이해가 맞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자기 자신에게 관계하는 관계가 참된자기"인데, 자기자신에게 관계하는 관계는 양극요소의 종합인 인간과 자기자신(나)의 관계임. 양극요소의 종합은 자기 힘으로 할 수 없으므로, 신과의 관계맺음을 통해 양극요소의 종합을 이루어내고 그것(양극요소의 종합)에 내(자기자신)가 관계함으로써 참된자기가 되는것이다.
위 내용은 이전질문 내용이었는데, 제가 설명한 방식으로 이해하면 된다고 답변주셨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하다보니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기자신에게 관계하는 관계는 양극요소의 종합인 인간과 자기자신(나)의 관계인데, 양극요소의 종합을 스스로의 힘으로 할 수 없으면 양극요소의 종합이라고 정의되는 인간 개념 자체가 처음에 존재할 수 없는 것 아닌가요? 신과의 관계가 먼저 선행되고 그를 통해 가능한 것이 양극요소의 종합이니까 신과의 관계를 통해 인간이 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인간은 신과의 인격적 관계를 통해 참된 자기가 된다라고 하는데, 신과의 인격적 관계를 통해 양극요소의 종합이 일어나고 이 때 비로소 양극요소의 종합인 인간이라는 개념을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신과의 인격적 관계를 통해 참된 자기가 된다라는 말이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하이데거>
현존재가 불안해하는 이유가 세계-내-존재-가능성인데, 세계-내-존재-가능성의의 의미가 정확히무엇인가요?
2-1. 여기서 세계-내-존재 라는 건 본래적 실존을 말하는 것인가요?
2-2. 어떤 의미인가요? 지금 내가 살아가는 일상적 세계가 붕괴되고 본래적 실존으로 드러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불안하다는 것인가요? 아니면 본래적 실존은 가능성이기 때문에 일상적인 세계가 붕괴되고 본래적 실존으로서의 내가 드러나게 되면 내가 삶을 스스로 만들어가야하는 존재가 되므로 불안하다는 것인가요?(다른 수강생 질문의 대한 교수님의 답변 : 실존은 미리 정해져 있는 존재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미래로 기투하는 존재, 즉 자신을 스스로 만들어가 가는 존재이기 때문에, 실존은 가능성입니다.이라고 하셔서 후자가 맞는 것 같긴합니다)
전자인가요 후자인가요?
3. 죽음은 현존재가 더 이상 현존재일 수 없는 최후의 가능성이라고 하는데요, 여기서 가능성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다른 수강생 질문의 대한 교수님의 답변 : 실존은 미리 정해져 있는 존재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미래로 기투하는 존재, 즉 자신을 스스로 만들어가 가는 존재이기 때문에, 실존은 가능성입니다. 라고 하셨는데, 이 의미를 적용시키면 이해가 안되는 것 같습니다.)
(2-2번 질문도 그렇고 3번 질문도 그렇고 하이데거가 사용하는 가능성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해 어려운 것 같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가능성이 있다.의 의미인건지 아닌건지 모르겠습니다..)
<현대 공리주의 - 무어>
4. 자연주의자들은 'A는 선하다 = A는 자연적 속성 α를 지닌다' 로 보기 때문에 선을 자연적 속성 α를 지시하는 개념을 본다고 설명해주셨습니다. 무어는 윤리적 쾌락주의 반대 논리를 전개하면서, 쾌락을 가져다주는 성질은 선한 것이 가진 공통의 어떤 자연적 성질이지 쾌락 그 자체가 선한 것은 아니라고 하면서 윤리적 쾌락주의가 자연주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윤리적 쾌락주의자들은 그럼 'A는 선하다 = A는 쾌락을 가져다주는 성질을 지닌다' 라고 보면서 선= 쾌락을 가져다주는 성질 로 보는 것이 맞을까요?
<긍정 심리학>
5. 교재 p.162 아리스토텔레스 윤리학과 VIA 분류 체계의 관계에서
공통점 / 차이점 : 행복 실현의 방법에 잇어 덕의 소유 및 발현을 강조함 /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고유한 기능인 사유의 덕을 잘 발휘함으로써 가능하다고 본 반면, VIA 분류 체계는 '대표 강점'을 잘 활용함으로써 가능하다고 봄.
이라고 되어 있는데요.
VIA 분류 체계는 6개의 핵심덕목과 24개의 인격 강점으로 분류하는데, 위 문장에서 말하는 '대표 강점'이라는 것은 24개의 인격 강점을 말하는 것인가요? 용어가 달라서 '대표 강점'이 VIA 분류 체계에서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나딩스>
6. 윤리적 배려의 감정이란
자연적 배려의 기억을 바탕으로 생기는 배려의 감정.
배려하고 배려 받았던 최상의 순간을 기억함으로써 '나는 해야 한다'라는 감정으로 내몰릴 때의 감정.
이라고 하는데,
'배려하고 배려 받았던 최상의 순간에 대한 기억'에서의 배려는 자연적 배려가 맞나요?
자연적 배려를 하고 자연적 배려를 받았던 최상의 순간에 대한 기억이 맞나요?
<칸트>
7. 이데아의 성격 -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도덕적 가치의 근원
선의 이데아의 성격 - 모든 선한 것들이 지닌 도덕적 가치의 근원
이렇게 되어있는데 둘이 뭐가 다른 건지 모르겠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
8. 합리적 선택이란 숙고를 통해 결정한 후 그 숙고에 따라 욕구하는 것이라 되어있습니다. 숙고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숙고결과를 욕구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자제력 없는 사람의 무절제한 행위는 자신의 합리적 선택에 반하는 행위이고, 자제력 없는 사람은 합리적 선택을 소유하고 있으나, 실행하지 못하는 사람이다.라고 되어있습니다. 합리적 선택을 소유했다는 말은 합리적 선택의 정의에 따르면, 숙고결과를 욕구하는 것이라고 해석이 되는데요. 그런데 또 합리적 선택에 반하는 행위를 하는 이유는 감정에 져서라고 설명해주셨습니다.
그러면 자제력 없는 사람은 처음엔 숙고에 따른 결과를 욕구했으나(합리적 선택을 소유했으나), 이후에 감정에 져서 행위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실행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이해하면 될까요?
9. 실천적 지혜와 기예의 차이점
제작은 제작 그 자체와는 다른 목적을 갖지만, 행위의 목적은 행위 그자체를 잘하는 것이다. 라고 하는데, 기예에 해당하는 '제작은 제작 그 자체와는 다른 목적을 갖지만'의 부분은 이해가 되었는데, 실천적 지혜에 해당하는 '행위의 목적은 행위 그자체를 잘하는 것이다'라는 문장이 의미하는 바를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실천적 지혜에서 행위의 목적은 '인간으로서 전체적으로 잘 사는 것'이라고 알고 있는데, 그러면 '인간으로서 전체적으로 잘 사는 것'은 숙고하여 선택한 것을 잘 행하는 것이다 라는 의미인가요?
10.보충자료 22페이지에, 품성의 탁월성은 우리가 바라보는 목표를 올곧게 해주며, 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성품의 탁월성은 그러한 탁월성을 지닌 사람으로 하여 어떠한 상황에서도 항상 좋음(선)을 목적으로 욕구하도록 이끄는 탁월성입니다.
위 문장은 교수님의 답변인데요. 보충자료에 제시된 문장과 교수님의 답변 문장이 같은 말인가요? 우리가 바라보는 목표를 올곧게 해 준다는 말이 항상 선을 목적으로 추구하게끔 만든다는 말인가요?
모든 인간의 행위는 좋음을 목적으로 추구하는데, 그렇다면 모든 사람이 품성의 탁월성을 소유하고 있다는 걸로 해석이 되어서요.
항상 답변 감사합니다.
본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