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강의질문] 질문드립니다
- 작성자
- 김병찬
- 등록일
- 2023년 10월 10일 23시 18분
- 조회수
- 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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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감사합니다. 질문하신 순서대로 답변드리겠습니다.
스피노자
1-1. 신의 본성의 필연성, 즉 자연의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인과법칙이 모든 양태의 존재 원인입니다.
1-2. 타당한 인식이란 타당한 관념으로 구성된 인식입니다. 따라서 타당한 인식을 통해 타당한 관념을 소유하는 것이 아닙니다.
2. 나의 본성 및 자연의 본성에 대한 타당한 인식을 소유한다는 것은 곧 그것에 대한 타당한 관념을 소유한다는 말입니다.
3. 모든 형태의 타당한 인식은 타당한 관념들로 구성됩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타당한 관념들의 논리적 결합으로 통해 형성되는 것이 타당한 인식입니다. 예를 들어 ‘모든 사람은 죽는다.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 따라서 소크라테스는 죽는다.’라는 연역추론에서 결론을 타당한 인식이라 했을 때, 이는 사람, 죽음, 소크라테스라는 타당한 관념들로 구성된 인식입니다.
4. 아닙니다. 감정은 변용, 즉 역량의 변화를 지시하는 개념입니다.
흄
5. 네.
6. 이성이 산출하는 지식은 행위의 직접적 동기가 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만약 도덕(도덕판단, 도덕적 관념)이 이성에 의해 산출된 것이라면, 도덕은 행위를 직접적으로 산출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도덕은 정념을 자극하여 행위를 일으키거나 억제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따라서 도덕은 이성의 산물일 수 없습니다.
7. 문장을 다음과 같이 수정하겠습니다. “덕 있는 행위 혹은 성품은 시인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고, 부덕한 행위 혹은 성품은 부인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키르케고르
8. 네.
9-1. 네.
9-2. 네.
9-3. 종교적 실존은 유한한 자기와 무한한 가능성, 간략히 말해서 유한성과 무한성을 신과의 관계 속에서 종합한 존재입니다. 따라서 그는 무한한 가능성, 무한한 자유 앞에서 중압감을 느끼지 않으며, 불안 때문에 그것을 회피하려 하지 않습니다.
10. 윤리적 실존은 절망 속에서 죄성을 자각하게 됩니다.
11. 홀로 자기를 선택한다는 것은 단독자로서 자신을 정립한다는 말입니다.
하이데거
12. 세계-내-존재는 현존재의 본질적 구조입니다. 따라서 어떤 실존 방식을 가지고 있든 간에 현존재는 세계-내-존재입니다.
불안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 달리 말해서 현존재에게 불안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세계-내-존재 그 자체로서의 현존재인데, 여기서 ‘세계-내-존재 그 자체로서의 현존재’는 넓은 의미의 현존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본래적 실존을 말하는 것입니다. 요컨대 본래적 실존이 세계-내-존재로서의 현존재에게 불안을 야기합니다.
세계-내-존재로서의 현존재는 세계 안에서 자신의 가능성을 정립하고 그것을 실현해 나가야 하며, 그 과정에서 생겨나는 모든 것에 대한 책임을 자신이 인수해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불안해 합니다. 만약 현존재가 가능성이 아니라면, 불안해 하지 않겠지요. 결국 현존재는 세계-내-존재-가능성 때문에 불안해 합니다.
야스퍼스
13. 답변 내용을 숙지하시기 바랍니다.
▒▒▒▒▒▒ [한동현 회원님의 글] ▒▒▒▒▒▒
안녕하세요. 공부하면서 모르는 내용을 계속 추가하다보니 글이 매우 길어졌습니다..
항상 답변 감사드립니다. 아래는 서양 파트 질문입니다.
스피노자
1-1. 제 3종의 인식은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인과법칙에 대한 전체적이고 참된 인식을 통해 개별 사물들의 본질을 인식하는 것인데요. 여기서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인과법칙이 타당한 원인이 되는 것이 맞나요?
1-2. 또한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인과법칙에 대한 전체적이고 참된 인식을 통해 우리는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인과법칙에 타당한 관념을 가지게 되는 것이고, 이 타당한 관념을 가지고 개별 사물들의 본질을 인식하는 것으로 나아가는 것이 맞나요?
2. 능동적 감정 소유의 조건 : 나의 본성 및 내가 그것의 부분인 자연의 본성에 대한 타당한 관념의 소유, 즉 나 자신과 세계에 대한 타당한 인식의 소유 라고 나와있는데요.
능동적 감정은 나의 정신이 감정에 대한 타당한 인식을 소유하고 있는 감정인데, 어떤 것에 대해 타당한 인식을 하기 위해서는 그것의 타당한 원인을 인식해야 하는데, 타당한 원인은 나의 본성이므로, 나의 본성에 대한 인식을 해야 한다고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능동적 감정의 소유 조건이 위와 같이 제시되어 있다고 이해했습니다.
나의 본성 및 자연의 본성에 대한 타당한 인식을 소유하게 되면 나의 본성 및 자연의 본성에 대한 타당한 관념을 소유하게 되는 것이 맞나요?
3. 1번과 2번 질문 모두 타당한 인식과 타당한 관념의 선후 관계를 잘 모르겠어서 생긴 의문인 것 같습니다.
다른 수강생의 질문에 대한 교수님의 답변을 찾아보던 중,'인식이란 관념들로부터 다른 관념들을 연역하는 것. 타당한 인식이란 타당한 관념에 근거하여 타당한 관념을 연역하는 것 즉, 타당한 관념들로 구성된 인식.' 이라는 답변을 보았는데요, 그렇다면 타당한 인식을 함으로써 타당한 관념을 소유하게 되는 것이고, 그 타당한 관념에 근거하여 또 다른 타당한 인식을 하게 되는 것인가요?
4. 감정이란 신체의 행위 역량을 증대시키거나 감소시키는, 또는 촉진하거나 저해하는 신체의 변용이자 동시에 이러한 변용들의 관념인데요.
신체의 변용이 발생하면 신체의 행위역량이 증대 또는 감소된다는 의미가 맞을까요?
흄
5. 이성은 의지를 지도함에 있어서 정념에 대립할 수 없다 .
행동은 이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며, 다만 이성에 의해 지도될 뿐이다.
여기 두 문장에서 이성의 지도는 무엇을 말하는 건가요? 정념과의 관계에서 이성의 역할을 말하는 건가요?
6. 도덕적 선과 악의 구별은 이성의 산물이 아니다 의 근거로
a. 이성은 홀로 행위와 정념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 와
b. 도덕은 정념을 자극하여 행위를 일으키거나 억제한다. 가 있는데요
a.와 b.모두 문장 자체는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b.가 왜 도덕적 선과 악의 구별은 이성의 산물이 아니다의 근거가 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7. 도덕적 관념인 선과 악/ 덕과 부덕을 설명해주시면서, 강의에서 합격 불합격의 예시를 들어주셨습니다. 합격은 시인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불합격은 부인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고 했을 때, '선'이라는 관념이 지칭하는 것은 합격이 아니라 시인의 감정 그 자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교재 p.178 밑에서 두번째 줄을 보면, 덕은 시인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고, 악덕은 부인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라고 적혀있습니다. 이 말은 덕이 시인의 감정 그 자체가 아니라 시인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대상)을 지칭하는 것 같습니다...
키르케고르
8.절망을 알고 있으나 ‘자신’ 이기를 원하지 않는 절망에서의 ‘자신’은 참된 자기를 의미하고,
절망하여 ‘자기 자신’이고자 하는 절망에서의 ‘자기 자신’은 자신이 설정한 허구적 자기를 의미하는 게 맞을까요?
9-1. 본래적 실존 =종교적 실존 =참된 자기 가 맞나요?
9-2.실존의 본질적 특징인 무한한 자유와 무한한 가능성은 심미적 실존, 윤리적 실존, 종교적 실존 다 가지고 있는 것이 맞나요?
9-3. 종교적 실존(본래적 실존)도 실존의 본질적 특징인 무한한 자유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면, ’불안은 비본래적 실존이 자신을 본래적 실존으로 정립하고자 할 때 궁극적으로 제거된다‘라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불안의 원인이 자신의 스스로 확립한 가능성을 실현하고자 하는 욕망과 미래에 대한 무지로 인한 가능성 실현에 있어서의 중압감 이라는 대립하는 두 감정인데, 종교적 실존도 무한한 자유와 가능성을 지니고 있으니 불안이 제거가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10. 윤리적 실존의 절망을 통해 죄성을 자각하게 되는 것인가요? 아니면 죄성을 자각하게 되면서 절망하는 것인가요?
11. 종교적 실존의 특징으로
신 앞에서 신과 대면하여 홀로 자기를 선택하는 존재 라고 나와있는데, 여기서 홀로 자기를 선택한다는 것은 홀로 참된 자기가 될 것을 선택한다는 의미인가요?
하이데거
12.
다른 수강생분의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아래와 같이 설명해주셨습니다.
- 현존재가 어떤 형태의 실존 방식을 가지든 간에 , 현존재로서의 인간은 본래 ‘세계-내-존재’입니다.
- 다른 수강생 분의 질문 : 현존재가 불안해하는 대상은 일상적 세계가 붕괴되면서 자신에게 섬뜩하게 드러나는 ‘세계-내-존재 그 자체로서의 현존재’라는 문장에서 ‘세계-내-존재 그자체로서의 현존재’가 참된 실존 즉 본래적 실존을 의미한다고 해석해도 될까요?
교수님의 답변 : 네. 본래적 실존입니다.
- 현존재는 세계-내-존재-가능성 때문에 불안해합니다. 세계-내-존재-가능성 때문에 불안해 한다는 말은 실존 가능성 때문에 불안해 한다는 말입니다.
지난 번 “현존재가 불안해 하는 이유 : 세계-내-존재-가능성 때문인데, 여기서 세계-내-존재라는 것은 본래적 실존을 말하는 것인가요?”라고 질문 드렸는데, 답변으로 아니라고 설명해주셨습니다. 세계-내-존재는 현존재라고 설명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위의 내용들을 종합해보면,, 현존재는 비본래적으로 존재하든, 본래적으로 존재하든 세계-내-존재라고 일컬어지기 때문에 “현존재가 불안해 하는 이유 : 세계-내-존재-가능성 때문” 이 문장에서처럼 세계-내-존재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저 문장에서의 세계-내-존재는 본래적으로 존재하는 현존재(본래적 실존)을 의미하는 것 아닌가요?
야스퍼스
13. 야스퍼스에서 가능적 실존 개념이 무엇인가요? 강의에서 말씀해주신 내용과 질문 게시판에 올라와있는 답변내용이 상충되는 것 같아 질문드립니다.
강의에서는 야스퍼스는 실존에 대해 이야기할 때, 실존이라는 표현보다 가능적 실존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현존재가 아닌 실존이 가능적 실존이라고 이해했습니다.
아래는 다른 수강생분의 질문에 대한 교수님의 답변인데요. 아래글에서는 현존재가 가능적 실존이라고 하셔서요. 어떤 것이 맞는지 궁금합니다.
가능적 실존’은 현존재로 있는 인간이 언제든 실존으로 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야스퍼스가 사용한 개념으로서, 야스퍼스만이 사용한 그의 고유한 개념입니다. 야스퍼스에 의하면, 비록 현존재로 살아가고 있는 ‘나’는 실존은 아니지만 실존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소유하고 있는 존재, 즉 가능적 실존입니다. 요컨대 현존재는 가능적 실존입니다. 그런데 현존재는 가능적 실존일 뿐 참된 실존은 아닙니다. 따라서 현존재는 실존됨의 가능성을 현실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한계상황을 회피하지 않고 그것에 직면하여 철저하게 좌절하고, 그러한 좌절 속에서 드러나는 초월자의 사귐을 통해서만 가능적 실존인 현존재는 현실적 실존이 됩니다.
항상 답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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