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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내용질문

[1~2월 강의질문]  질문드립니다.

작성자
김병찬
등록일
2023년 11월 13일 10시 52분
조회수
576
첨부파일
질문 감사합니다. 질문하신 순서대로 답변드리겠습니다. 묵자 1. 삼표법는 시비 판단을 위한 일반적인 세 원칙을 말한 것이고, 상동은 국가의 운영과 관련한 모든 판단과 처분의 권한을 현자인 통치자가 행사하고, 백성들은 통치자의 판단과 처분을 마치 자신이 내린 것처럼 수용하여 그것에 복종해야 함을 의미하는 개념입니다. 따라서 둘 사이에 모순은 없습니다. 맹자 2. 맹자는 ‘천명’ 개념을 다차원적으로 사용합니다. 우선 우리가 보통 운명이라 부르는 것, 즉 부귀, 빈천, 사생, 화복 등과 같이 태어나면서부터 결정된 것(우리가 보통 운명이라 하는 것)을 천명이라 합니다. 둘째, 맹자는 만물의 운행 원리이자 존재 원리를 일컫는 개념으로 천명을 사용합니다. 천명지위성은 이와 관련된 개념입니다. 셋째, 맹자에 있어서 통치권의 근원이 되는 것이 천명입니다. ‘진심상장’에 나오는 ‘천명을 기다린다’는 인간이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한 후 그 결과를 하늘에 맡기고 기다린다는 의미를 지닌 표현입니다. 흄 3. 논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객관적 사실 안에는 선악이 없으므로, 객관적 사실에 대한 경험을 통해 선악을 인식할 수 없다. 전제에 사용되지 않은 개념은 결론에 나올 수 없다. 도덕판단은 선악 개념을 사용한 판단이다. 따라서 객관적 사실에 대한 경험적 지식을 전제로 선악 개념이 사용된 도덕판단을 이끌어 낼 수 없다. 노자 4. 노자에게 있어서 천이란 도에 따라 작용하여 자생자화하는 천지자연 그 자체를 일컫는 개념입니다. 나딩스 5. 네. 6.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 사이의 배려하는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한다는 말입니다. 콜버그 7. 학생들이 자신들이 경험하는 실제 삶의 문제를 자발적으로 토의하는 과정을 통해 그들의 도덕성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학교 교육 프로젝트를 정의의 교육과정이라 합니다. 8. 조언집단의 토론의 목적은 소규모의 학생들과 조언자가 공동체 모임에서 논의될 이슈에 대한 사전 토론을 통해 학생들과 교사들을 준비시키는데 있습니다. 하이데거 9. 아닙니다. 자기 세계는 평균적 일상인의 삶을 살아가던 현존재가 자신의 실존 가능성을 문제삼고 그것을 자신에게 스스로 드러내고자 할 때 개시되는 세계입니다. 10. 네. 말씀하신 방식대로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11. ‘각자성을 상실했다’는 하이데거의 표현은 ‘각자성이 없음’을 뜻하지 않습니다. 일상인은 각자성이 없는 현존재가 아니라 아니라 각자성을 망각하고 있는 현존재입니다. 야스퍼스 12. 현존재에서 실존으로의 비약하는 행위를 초월이라 합니다. 이러한 초월은 내적인 절망 속에서 드러나는 신의 암호를 자각하고, 그것을 통해 신과 사귐으로써 이루어지기 때문에 내적인 행위입니다. 13. 서로 본래적 실존을 발견하기 위한 자타 상호간의 협동을 실존을 위한 사랑의 투쟁이라 합니다. 듀이 14~16. 말씀하신 대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 [한동현 회원님의 글] ▒▒▒▒▒▒ 안녕하세요. 질문드립니다. 묵자 1. 시비의 구별을 분명하게 판단하는 세 가지 표준인 삼표법이 있는데, 국가에는 시비에 대한 단 하나의 기준만 존재해야 하며, 그 기준은 통치자의 명령이다. -> 상동 이 두 부분이 모순되는 것 같습니다.. 삼표법에서는 시비 판단의 기준이 세 가지이고, 상동에서는 시비 판단의 기준이 통치자의 명령으로 단 하나라고 나와있어서요. 맹자 2. 강의에서 명의 존재를 긍정하는 사상가로 도가와 맹자를 제시해주셨는데요. 맹자는 수명, 귀천, 빈부 이런것들을 명이라고 본다. 그리고 천명이 있다. 명이 있으나 올바른 선비라면 거기에 개의치 않고 열심히 수양해서 천명을 기다리는 것이 도리이다. 라고 하셨는데, 2-1. 천명을 통해 인간의 마음에 성이 이미 내재하는데, 왜 천명을 기다리라는 것인가요? 2-2. 말씀하신 내용에서 명과 천명의 차이/의미가 무엇인가요? 흄 3. 보충자료 22페이지의 심화논증 2에서 객관적 사실 안에는 선,악이 없으므로(선,악은 경험관찰되지 않으므로) 사실에 대한 경험적 지식을 근거로 하여 도덕판단을 이끌어 낼 수 없다고 하는데요. 객관적 사실 안에 선, 악이 없다는 전제에서-> 사실에 대한 경험적 지식을 근거로 하여 도덕판단을 이끌어낼 수 없다는 결론이 어떻게 나오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노자 4. 보충자료 38페이지의 학습포인트 7번 문제 천의 성격에 대한 맹자, 순자, 노자, 묵자의 입장을 비교하시오. 문제에서 노자의 천의 성격은 무엇인가요? 나딩스 5. 보충자료 p. 10에서 윤리적 이상은 타자를 배려하고 싶다는 감정을 생겨나게 하는 원동력이자, 윤리적 배려를 산출하는 원동력이다. 라는 문장이 있는데, 여기서 '타자를 배려하고 싶다는 감정'은 윤리적 배려의 감정을 말하는 것인가요? 6. 확증의 도덕교육적 효과 중, 분리와 단절이 아니라 지속적인 관계 유지가 무슨 말인가요? 학생과 교사가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인가요? 콜버그 7. 학교의 잠재적 교육과정을 '정의의 교육과정'으로 탈바꿈시키는 것. 의 의미가 정확히 무엇인가요? '정의의 교육과정'이 무엇인가요? 8. 정의공동체의 제도적 구조에서 조언집단 - 공동체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도덕적 토론 공동체 모임 - 공동체 모임에서 이루어지는 토론은 도덕적 토론 이렇게 되어 있는데, 둘 다 도덕적 토론인데, 차이점이 무엇인가요? 하이데거 9. 여기 질문게시판 검색을 통해서 주위세계와 공공세계는 일상인의 세계라고 알게 되었습니다. 그려면 세 유형중, 주위세계와 공공세계는 일상인의 세계인데, 자기 세계는 자신의 실존 가능성에 대해 염려하는 세계이므로, 자기 세계도 일상인의 세계인가요? 10. 키르케고르에서는 심미적 실존, 윤리적 실존, 종교적 실존(본래적 실존)은 모두 실존이기에 본질적 특징인 무한한 자유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하이데거에서 비본래적 삶을 살아가는 현존재도 실존의 본질적 특징인 가능성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닌지 의문이 듭니다. 가능성을 지니고 있기는 한데, 일상적 세계에서 비본래적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그 가능성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가 일상적 세계가 붕괴하면서, 나는 나 스스로를 만들어나가는 존재임을 즉, 가능성을 지닌 존재임을 자각하게 되는 것인가요? 정리하자면, 현존재는 가능성인데, 그 가능성을 자각하고 실현하고 있냐, 없냐 따라서 본래적 삶을 사는 현존재, 비본래적 삶을 사는 현존재 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맞을까요? 11. 비본래적 삶을 사는 현존재도, 비본래적으로 살아갈 뿐 현존재이기는 한 것인데, 현존재의 특성인 각자성이 없다고 할 수 있는건가요? 교재에 일상인은 각자성을 '상실'한 존재라고 나와있어서 갑자기 의문이 들어 질문드립니다. 각자성을 가지고 있으나 그것이 실현되지 않고 드러나지 않고 있는 상태라고 보면 될까요? 야스퍼스 12. 한계상황에 직면하여 겪는 좌절과 절망은 현존재로 하여금 실존으로의 비약을 가능하게 하는 경험이다. 이러한 비약은 내적 행위로서의 초월이며, 그러한 실존적인 초월은 한계상황 앞에서 좌절하고 절망하는 경우에만 실현되는 것이다. 이 문장에서 '내적 행위로서의 초월'의 의미가 무엇인가요? 13. 아래 내용은 여기 게시판에 답변을 가져온 것인데요. 야스퍼스에 의하면, 실존간의 사귐에서 필연적으로 ‘실존과 투쟁해야 한다는 것’, 즉 사랑하는 타인과도 생존을 위한 폭력적 투쟁을 배제하면서도 ‘싸워야 한다는 것’ 자체가 한계상황입니다. 이러한 한계상황은 나 자신과 타인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계기가 되지만, 동시에 사랑하는 사람과 투쟁해야 한다는 사실로 인해 큰 절망과 좌절을 안겨주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야스퍼스는 참된 실존이 되기 위해서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실존적 투쟁의 불가피함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봅니다. 그에 의하면, 사랑하는 사람과 투쟁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착각이나 투쟁이 없으면 좋겠다는 헛된 바램은 실존과의 참된 사귐을 방해하고, 궁극적으로 참된 실존의 회복을 방해하는 요인이 됩니다. 질문입니다. 현존재를 위한 폭력적 투쟁은 현존재의 물질적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타인과 투쟁하는 것인데, 실존을 위한 사랑의 투쟁은 무엇을 위해 투쟁을 하는 것인가요? 실존과의 사귐을 통해 상호가 실존을 발견하기 위해 협동하는 걸 투쟁이라고 말하는 것인가요? 듀이 14. 도덕판단은 가치판단의 한 종류이므로, 가치판단의 성격인 사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판단이다. 미래예측판단이다. 이 두가지 모두를 도덕판단의 성격이라고 할 수 있는건가요? 15. 도덕판단은 전부 가언판단이라고 하는데, '도덕적 문제상황 X를 해결하려면, Y를 해야한다. ' 라는 형식을 지닌 것이 맞을까요? 16-1.'도덕적 문제상황이 X '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기 때문에 도덕판단은 세계의 객관적 사실(도덕적 문제상황 X)을 대상으로 삼는 판단, 사실에 대한 정보(도덕적 문제상황 X)를 제공하는 판단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까요? 16-2. Y가 X를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미래 예측 판단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까요? 공부하다가 생겨나는 질문을 계속 추가하다보니 많이 길어졌습니다. 항상 답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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