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팝업레이어 알림

뒤로

강의내용질문

[1~2월 강의질문]  공자 관련 질문 드립니다.

작성자
김병찬
등록일
2024년 02월 20일 10시 36분
조회수
188
첨부파일
질문 감사합니다. 질문하신 순서대로 답변드리겠습니다. 1. 실존주의자들이 사용하는 ‘실존’ 개념은 어떤 식으로 살아가는 개인의 삶의 방식을 지시하는 개념입니다. 심미적 실존은 심미적 방식으로 살아가는 개인을, 윤리적 실존은 윤리적 방식으로 살아가는 개인을, 종교적 실존은 종교적 방식으로 살아가는 실존을 지시하는 개념입니다. 이 중에서 오직 종교적 실존만이 신 앞에 선 단독자로서 살아가는 실존이고, 이것이 참된 자기 입니다. 달리 말해서 심리적 실존과 윤리적 실존은 신 앞에 선 단독자로 살아가는 실존이 아닙니다. 참고로 ‘신 앞에 선 단독자는 실존이며, 실존은 전부 단독자’라고 설명드린 기억이 없습니다. 2. ‘적재 전체성’에서 ‘적재’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적재 적소’라고 할 때 ‘적재’와 같은 의미입니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일상인이 관계하는 세계는 기본적으로 도구적 연관의 전체인 주위 세계입니다. 주위 세계에서 모든 사물들은 도구로서 사용되기 위한 자기 자리를 가집니다. 그러한 자기 자리는 원래 그런 자리가 아니라 도구 사용자가 어떤 목적 하에서 쉽게 도구를 사용하기 위해 지정한 자리입니다. 하이데거는 사용자가 도구로서의 사물을 어떤 자리에 배치하는 것을 ‘적소토록 한다’라고 표현하고, 그와 같은 방식으로 적재 적소에 있는 도구들의 연관 전체를 적재 전체성이라 표현합니다. 3. 무화적 능력은 불안으로부터 도피하려는 능력, 즉 불성실 혹은 자기 기만을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4. 부모의 잘못을 공공 기관에 고발하는 것은 정직도 아니고 기간도 아닙니다. 기간은 부드러운 말로 부모에게 간하는 효의 실천 방법이지, 부모의 잘못에 분노하여 대중 앞에 드러내는 행동이 아닙니다. 5. 네. 그러한 함의를 지닌 주장입니다. 행위 동기의 결과는 행위 그 자체이지, 행위를 통해 세계에 생겨나는 결과가 아닙니다. 달리 말해서 동기와 행위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는 것이지, 동기와 행위의 결과 사이에 인과관계가 성립되는 것은 아닙니다. ▒▒▒▒▒▒ [고하늘 회원님의 글] ▒▒▒▒▒▒ 안녕하세요, 교수님 ! 강의 수강 중 궁금한 내용이 생겨 질문 드립니다. 늘 유의미한 수업 감사드립니다 ! 1) 키르케고르 ‘신 앞에선 단독자’는 실존이며 실존은 전부 단독자라고 설명해주셨다. 신 앞에선 단독자는 본래적 실존으로 참된 자기다. 그러나 심미적 실존, 윤리적 실존은 절망을 겪는 단계로 참된 자기라고 볼 수 없지만 실존이다. 그렇다면 실존이 신 앞에선 단독자이며 참된 자기인 것이라는 말에 모순점이 생기는 것 아닌가? 2) 하이데거 교재 p284에서 지칭하는 적재 전체성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3) 사르트르 교재 p305 원문에서 ‘무화적 능력은 내가 불안을 피하는 한 불안을 무화하고 내가 불안을 피하기 위해 불안으로 있는 한 이 무화적 능력은 자별한다.’는 말이 이해가 안 된다. 무화적 능력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4) 공자 교재 p340 두 번째 원문을 보면 아버지는 아들을 위하여 숨겨주고 아들은 아버지를 위하여 숨겨주는 것이 정직이다. 아들이 아버지의 죄를 고발한 것을 정직하게 보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p341의 ‘기간’을 보면 부모의 잘못을 아뢰고 부모의 행위가 도에 어긋날 때는 옳은 길로 인도해야 한다고 나온다. 그렇다면 왜 부모의 잘못을 옳은 길로 인도하기 위해 죄를 고발한 것은 정직하지 않은 행동이 되는 것인가? 5) 스토아학파 ‘필연의 자유는 양립 가능하다.’는 말은 자연법(필연)에 대한 인식이 높아질수록 비이성적 정념에서 해방(참된 자유)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인간 행위의 결과는 도덕과 무관하며 인간의 동기는 도덕과 관련 있다는 동기주의에서 결국 인간 행위의 결과는 동기에 의한 것이 아닌가? 선한 동기가 선한 결과를 도출하는 것인데 왜 동기는 도덕과 관련이 있고 결과는 도덕과 관련이 없는가?

본문

댓글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