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강의질문] 질문 드립니다.
- 작성자
- 김병찬
- 등록일
- 2024년 09월 20일 23시 07분
- 조회수
- 187
-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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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감사합니다. 질문하신 순서대로 답변드리겠습니다.
<원효>
원효에 의하면, 이법계는 사법계의 체고, 사법계는 이법계의 용입니다. 달리 말하면 심생멸문의 체는 무명이 아니라 심진여문입니다. 그리고 심진여문의 일심의 체인데, 심생멸문 혹은 온갖 분별망상은 그러한 일심의 작용이지 무명의 작용이 아닙니다. 무명은 단지 조건일 뿐입니다.
<지눌>
1. “이번 생에 이르러 들으면 곧 깨달음이 열려 일시에 단박 마친다.”에서 깨달음은 점수 선의 깨달음(해오)가 아니라 점수 후에 이르게 되는 완전한 깨달음입니다.
2. 혜능이 돈오돈수라 할 때 돈오는 완전한 깨달음이고, 지눌의 돈오점수에서 돈오는 해오입니다. 지눌의 관점에서 볼 때, 전자의 돈오는 점수의 결과이고, 후자의 깨달음은 점수 이전의 깨달음입니다.
3. 네.
<아리스토텔레스>
아닙니다. 모든 형태의 지적인 탁월성의 기원은 가르침입니다. 학문적 인식 부분의 탁월성과는 달리 실천적 지혜의 독특한 점은 그러한 가르침이 오랜 시간에 걸친 경험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데 있습니다.
▒▒▒▒▒▒ [이주연 회원님의 글] ▒▒▒▒▒▒
안녕하세요 교수님! 원효와 지눌 질문이 있습니다.
<원효>
환귀일심을 위한 수행법(지행, 관행)을 보면 망상의 일어남을 막고, 마음에서 일어나는 상들의 실상을 잘 인식한다는 것으로 미루어 생각해볼 때 무명의 제거를 말하는 것 같은데,
원효 원문을 보면 '비록 육도의 물결을 일으키지만 일심의 바다에서 벗어나지 않고 참으로 일심이 활동하여 육도를 일으키므로, 널리 구제하겠다는 서원을 말하게 된 것이다.'의 '일심이 활동하여 육도를 일으키므로'라는 부분을 보면 일심으로 돌아갔는데도 무명을 조건으로 한 미혹의 생멸을 일으킨다는 것처럼 생각되어서요! 제가 이해를 잘 못하고 있는 것일까요?
<지눌>
1. 지눌 원문 관련 질문입니다!
원문 '비록 '돈오돈수는 가장 뛰어난 근기가 들어가는 것이다'라고 하지만, 만약 과거를 미루어보면 이미 여러 생을 깨달음에 의지해 닦아 점점 훈습해오다가 이번 생에 이르러 들으면 곧 깨달음이 열려 일시에 단박 마친다. 실제로써 말하면 이 또한 먼저 깨닫고 뒤에 닦는 근기이다.에서
지눌은 선오후수를 주장하는데, 원문 '만약 과거를 미루어보면 이미 여러 생을 깨달음에 의지해 닦아 점점 훈습해오다가 이번 생에 이르러 들으면 곧 깨달음이 열려 일시에 단박 마친다.' 이 부분을 보면 점수를 돈오보다 먼저 말하는 것 같고, 또 그 뒤 문장 '실제로써 말하면 먼저 깨닫고 뒤에 닦는 근기이다.'부분은 선오후수를 맞게 말하는 것 같아서 잘 이해가 안됩니다.ㅠㅠ 또한 최상의 근기를 가진 사람은 자성정혜 혹은 돈수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것도 결국 돈오 점수이다라고 말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2. 교재에 해오 관련해서 해오는 수행 이전 혹은 수행 없이도 얻어지는 깨달음이고, 돈오가 해오이다.라고 써있는데, 교수님 설명에 의하면 돈오는 수행의 결과라고 하셔서 해오를 설명할 때의 수행은 점차적 수행 즉 점수로 이해하면 되는 걸까요?
3. 교종과 선종의 대립을 극복하기 위해 지눌이 제시한 방안으로 정혜쌍수, 돈오점수 이렇게 두 가지 방안으로 생각해도 될까요?
<아리스토텔레스>
1. 실천적 지혜는 지적인 탁월성에 속하는데, 그것을 획득하기 위한 방법으로 지적인 탁월성 획득의 공통적인 방법인 가르침보다는 경험을 통한 앎이라고 알아두는게 좋을까요?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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