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팝업레이어 알림

뒤로

강의내용질문

[1~2월 강의질문]  아리스토텔레스 질문드립니다.

작성자
김병찬
등록일
2024년 09월 23일 00시 01분
조회수
262
첨부파일
질문 감사합니다. 질문하신 순서대로 답변드리겠습니다. 1. 이차적 행복은 품성의 탁월성과 실천적 지혜를 소유함으로써 얻는 행복입니다. 이 행복은 인간의 궁극 목적인 최고선으로서의 행복이 아닙니다. 최고선으로서의 행복은 철학적 지혜에 따른 관조적 활동입니다. 따라서 전자의 행복과 후자의 행복은 본질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만약 전자는 불완전하고 후자는 완전하다고 말한다면, 전자가 후자의 속성을 불완전하게나마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죠. 요컨대 이차적 행복은 나름대로의 행복인 것이고, 그것은 철학적 지혜에 따른 관조적 활동이 미완성된 형태가 아닙니다. 2. 말씀하신 대로 지성의 대상은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해당 부분은 행복을 논하고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신적인 것과 관계하는 지성의 특징에 대해서만 말한 것입니다. 지적인 탁월성이 아니라 가장 완전한 지적인 탁월성은 철학적 지혜라고 서술되어 있습니다.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3. 자제력 있는 사람은 탁월성이 없는 사람입니다. 탁월성이 없는 사람의 행위가 탁월성에 따른 행위일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자제력 있는 사람의 행위가 탁월성은 지닌 사람의 행위와 외형상 동일하다고 해서 그 행위가 탁월성에 따른 행위는 아닙니다. 단지 이성에 따른 행위일 뿐입니다. 4. ‘탁월하게 일어난 행위와 탁월성에 따라 일어난 행위’의 구분 기준을 제시하는 부분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행한 주장과 탁월성과 즐거움을 논하는 부분에서 그가 행한 주장을 연결하려는 시도는 좋습니다. 단, 시험 준비라는 측면에서 보면 무의미합니다. 이는 다른 주제와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논의를 있는 그대로 따라 가시기 바랍니다. 탁월성을 따르는 행위는 그것의 원인이 탁월성인 행위입니다. 따라서 탁월성을 따르는 행위는 탁월성이 소유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행위입니다. ▒▒▒▒▒▒ [이정빈 회원님의 글] ▒▒▒▒▒▒ 안녕하세요 교수님 아리스토텔레스 강의를 끝까지 수강하였습니다. 호기롭게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많은 내용들을 배우다보니 헷갈리고 의문이 드는 지점들이 많아지네요.. 그래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질문을 드립니다. 1. 품성의 탁월성과 실천적 지혜를 소유하여 얻게 되는 행복은 '완전한 행복은 아니다.' 라고 강의에서 말씀해주셨는데, 강의내용질문 페이지에서 궁금증을 해결하던 중 보게 된 교수님의 답변에서 아래와 같은 문장을 확인하였습니다. '우선 유의해야 것은 불완전한 행복과 완전한 행복의 구분은 없다는 것입니다. 단지 행복하지 않은 상태와 행복한 상태가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불완전한 관조적 활동과 완전한 관조적 활동의 구분도 없습니다.' 해당 문장은 즐거움이 행복한 삶, 관조적 활동을 더욱 완성시켜준다는 표현은 부적절하다는 문장을 위한 부가 설명으로 나온 것이었는데, 불완전한 행복과 완전한 행복의 구분이 없다면, 품성의 탁월성과 실천적 지혜를 소유하여 얻게 되는 행복은 불완전한 행복이 아니면 어떤 행복인 건가요? 이차적 행복은 불완전한 행복의 개념이 아닌 건가요? 2. 보충자료 28페이지에 보면 '영혼 안에 있는 최선의 부분은 본성상 신적인 것들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있는 부분, 즉 지성이다.' 라는 문장이 있는데, 지성(이성)은 이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좋음과 관련한 가변적이고 유한한 것들에도 관련있는 것 아닌가요? 그리고 '지성의 탁월성은 철학적 지혜이다.'라고 나오는데, 어떤 의미에서 철학적 지혜라고 한 것인지 이해는 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지성의 탁월성은 이성적으로 헤아릴 수 있는 부분의 탁월성도 포함하는 것인데, 저렇게 단정지어서 표현해도 괜찮은 것인가요? 3.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자제력 있음'의 상태가 이성의 명령에 따라 행위하지만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인데, 그럼 탁월성을 소유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인데, 이때 '탁월성에 따른 행위'를 했다고도 말할 수 없는 건가요? 아니면 탁월성에 따른 행위를 할 수 있으나 탁월성을 갖추지는 못했다고 보아야 하나요? 즉 '탁월성에 따른 행위(탁월성에 따라 일어난 행위)'가 곧 탁월성을 소유하고 있다는 의미와 같다고 볼 수 있는 것인지가 헷갈립니다. 교재 53페이지에서 <탁월하게 일어난 행위와 탁월성에 따라 일어난 행위를 구분>에 관해서 나오는 부분에 '품성의 탁월성에 따라 행위할 뿐만 아니라 탁월한 사람이 행하는 방식대로 위의 세 가지 요건들을 충족시킬 때에야 참으로 품성의 탁월성을 지닌 사람이다.'라는 말이 나오는데요. 저는 탁월성을 갖췄을 때 '탁월성에 따른 행위'가 가능하다고 이해했었습니다. 그런데 저 문장을 따져보면 탁월성에 따라 행위하는 것과 더불어 3가지 요건을 충족할 때에야 탁월성을 소유한 사람이라는 의미로 느껴지기 때문에 '품성의 탁월성에 따른 행위가 탁월성을 소유하고 있음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 아닌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커졌습니다. 4. 3번과 유사한 질문인데요. 품성의 탁월성을 갖춘 상태에서 '탁월성에 따라 일어난 행위'이기 위한 조건 3가지는 <1) 알면서 행위해야 한다. 2) 합리적 선택에 의거해서 행위하되 그 자체 때문에 선택해야 한다. 3) 확고하고도 흔들리지 않은 상태에서 행위해야 한다.> 입니다. 그런데 교재 81페이지 윤리학적 귀결에 관한 내용을 보면, '탁월성에 따르는 행위 그 자체로부터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진정으로 탁월성을 소유한 사람이 아니다.' 라고 하는데, 결국 '즐거움을 느끼는 것'도 하나의 조건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이 '즐거움을 느낌'이 위 조건 3가지에서 부합하는 것이 있나요? +여기서 '탁월성에 따르는 행위에서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면 탁월성을 소유한 사람이 아니다'라는 것은 탁월성에 따르는 행위가 탁월성을 소유함을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인가요, 아니면 '탁월성에 따르는 행위'라는 워딩 자체가 그저 덕 있는 사람이 하는 행위(가지지 않더라도 따라할 수 있듯이)를 나타내는 것이므로 '탁월성에 따르는 행위'라는 말이 탁월성을 소유한 사람에게만 사용 가능한 것인가요? 질문의 내용을 짧게 작성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제가 궁금한 바를 최대한 풀어내어 답변받고 싶은 마음에 구체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강의 항상 잘 듣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본문

댓글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