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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내용질문

[1~2월 강의질문]  이이

작성자
김병찬
등록일
2024년 11월 04일 22시 22분
조회수
202
첨부파일
질문 감사합니다. 질문하신 순서대로 답변드리겠습니다. 1-1. 성리학에 의하면, 마음을 포함하여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이와 기의 결합으로 구성됩니다. 이는 기를 타고 유행하고, 기는 이를 담고 있는 이의 의착처입니다. 이이의 ‘심즉기’ 주장의 의미는 직전에 답변드렸습니다. 1-2. 단서설이란 맹자가 말한 ‘단’은 ‘서(실마리)’를 의미한다는 주장입니다. 맹자는 측은, 수오, 사양, 시비의 마음을 인, 의, 예, 지의 단이라고만 말했을 뿐, 단이 서라고 주장한 바가 없습니다. 유가 경전인 ‘예기’에 칠정은 ‘사람이 배우지 않아도 잘하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즉, 칠정은 선천적이라는 말입니다. 성리학자들은 칠정에 대한 이 규정을 원칙적으로 수용합니다. 1-3. 데이먼이 주장하고자 한 것은 세속주의와 종교, 달리 말해서 세속적 도덕(세속적인 도덕적 가치와 규범)과 종교적 도덕(종교적 가치와 교리)을 대립하는 것으로 보고서 하나를 배척하려 하지 말고 전체적인 도덕교육 과정 안에 통합하지는 것입니다. 1. 도추란 만물제동의 깨달음에 이른 경지이고, 양행은 그러한 깨달음에 이르는 방법입니다. 2. ‘팔미의 양 극단적 사상’이란 생과 멸, 상과 단, 일과 이, 거와 래를 말하는 것이고, 그것을 분쇄한다는 것은 양 극단의 어느 한쪽에 집착하는 것의 문제점을 지적하여 중도의 진리를 입증함을 의미합니다. 3. 화엄의 법장은 육상을 체(體), 상(相), 용(用)으로 구분합니다. 총상과 별상은 체에 해당하고, 동상과 이상은 상에 해당하고, 성상과 괴상은 용에 해당합니다. 이처럼 동상은 별상의 하나하나가 조화를 이루어 총상을 이루고 있는 모습을 나타내는 개념이고, 이상은 별상들이 서로 혼동되지 않고 있으면서, 제각기 상을 잃지 않고 조화되어 있는 모습, 달리 말해서 여러 개별적이 상들이 서로 어울려 전체를 이루면서도 각각의 개별적 특성을 잃지 않고 있는 모습을 지시하는 개념입니다. 성상은 각기 다른 별상이 화합하여 총상을 이루어 가는 것을 의미하는 개념입니다. 괴상은 별상이 총상을 성립시키면서도, 별상 각각의 자격을 갖추어 총상의 모양으로 혼용되지 않는 것, 달리 말해서 별상들의 여러 역할이 모여 총상을 이루면서도 유지되고 있는 별상들 각각의 역할을 괴상이라 합니다. 4-1, 4-2. 당시 선종의 수행법인 선법의 본질적인 특징은 교를 등한시하고 오로지 좌선하여 내면으로 깊숙이 몰입하여 단번에 깨달음을 얻는 것입니다. 의천은 이러한 선종의 선법으로는 참된 깨달음에 이를 수 없다고 보고, 항상 교와 함께 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천태선법을 수용하였습니다. 그리고 강의 시간에 말씀 드렸듯이 모든 종파가 지관 혹은 정혜에 대한 일반적 정의를 사용합니다. 차이점을 그것의 구체적인 수행방법에 있습니다. 4-3. 네. 5. 개념 ‘용’이 지시하는 대상은 평상의 도리입니다. 6. 네. 튜리엘에 의하면, “타인에게 피해를 가지 않고 공정하게 대우하라(타인을 공정하게 대우하고 배려하라).”는 도덕적 영역에 해당하는 도덕원리로서, 도덕판단의 근거이자 도덕판단의 정당성을 결정하는 기준입니다. 7.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제력 없음’ 개념은 하르트숀과 메이의 연구와 아무런 관련성도 없습니다. 즉, 하르트숀과 메이는 자제력 없음 현상을 연구한 것이 아니라 덕 혹은 악덕으로 이루어진 인격의 실제 여부를 연구한 것이고, 그것이 실재하지 않음을 연구를 통해 입증하였습니다. 참고로 어떤 이론을 다른 이론들과 비교하여 다각도로 검토해 보려는 시도는 매우 훌륭한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단, 그러한 검토 과정에서 범주 착오를 범하지 않도록 조심하셔야 합니다. 8. 라이언의 인격교육론에 대해서는 제 교재의 서술되어 있는 것 이상의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변을 드릴 수 없는 점 양해 바랍니다. ▒▒▒▒▒▒ [고하늘 회원님의 글] ▒▒▒▒▒▒ 1. 10월 29일에 답변해주신 내용 중 추가 질문이 있어 질문 드립니다. (해당 질문과 답변 첨부 파일로 첨부했습니다) 1-1. [1. 이이]에 대하여 <‘심즉기’는 이이의 주장으로서, 이황에게서는 보이지 않습니다.>고 답변 주셨습니다. 그럼 이황이 마음의 본체가 성(=이)고 마음이 천리를 담고 있는 장소이기 때문에 '마음'을 '기' 로 본 것은 맞나요? 1-2. [2. 맹자]에 대하여 맹자는 단서설을 주장한 바가 없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맹자 보충자료 11p에 '사단은 인간이 가직 보편적이고 선천적인 도덕심으로서, 사덕의 단이다.'라고 표현되어 있을 때 '사덕의 단'을 어떻게 해석하면 좋을까요? 또한 주자에게 사단과 사덕은 선천적인 것이라고 말씀해주셨는데 사단(정)은 사덕(성)이 발하여 나타난 것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종류의 정이 선천적인 것이라고 봐야하는 걸까요? 아니면 정은 후천적인데 사단만 선천적인 것이라고 봐야할까요? 1-3. [교과교육론 데이먼] 세속주의와 종교의 통합이 '도덕 판단 과정에서 합리적 근거와 더불어 종교의 가치와 규범을 판단의 근거로 활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세속주의'의 의미가 개인의 사상이 종교로부터 분리되어야 한다는 입장인데 그렇다면 이는 모순되는 것 아닌가요? [지난 답변과 관계 없는 새로운 질문입니다.] 1. 장자 장자에게 도추란 차별 없는 도의 관점에서 모든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분별을 타파함으로써 천지만물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경지이고 양행은 시비의 어느 한 편에 서지 않고 둘 다 긍정하고 둘 다 부정하는 병행의 논리를 통해 만물제동의 이치를 깨닫는 방법인데 둘다 차별 없는 관점에서 본다는 것에서 같다고 느껴지는데 도추와 양행의 차이가 무엇인가요? 2. 인도의 초기 대승불교 보충자료 P7 팔불중도게에서 '팔미의 양 극단적 사상을 분쇄'한다는 표현이 이해가 되지 않아 질문 드립니다. 3. 중국 화엄종 '법계연기의 실상 : 육상원융(보충자료p19)'에서 동성과 성상, 이상과 괴상의 차이가 무엇인가요? 동성과 성상의 의미가 유사하고 이상과 괴상의 의미가 유사해서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지 질문드립니다. 4. 의천 4-1. 의천의 교주선종의 교선일치에서 이때의 지관은 선종의 관법이 아닌 천태관법을 따라야 한다고 설명해주셨습니다. 선종은 마음에 어지러움이 없는 것이 정, 마음에 어리석음이 없는 것이 혜라고 하며 정과 혜는 나누어 둘일 수 없다는 정혜불이를 주장합니다. 정=지, 혜=관 입니다. 교종(천태종)에서 말하는 지관병중 또한 지와 관을 함께 닦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라 선종에서 말하는 지관과 의미가 같다고 느껴지는데 어째서 의천은 지관에 있어 선종의 관법이 아닌 천태관법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 것인가요? 4-2. 그런 의미에서 선주교종의 선교일치를 말한 지눌에 있어 정혜쌍수에서 말하는 정혜의 개념(지관의 개념)과 교관병수에서의 관(지관의 개념)의 의미가 같다는 점에서 정혜쌍수와 교관병수는 대비되는 것이 아니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는 것 아닌가요? 4-3. '선주교종'과 '교주선종'이라는 용어가 선종이 주가되어 교종을 일치시키고 교종이 주가되어 선종을 일치시킨다는 말인가요? 5. 주자와 다산의 '용' 개념 주자에게 '용'은 평상의 도리로 인간의 마음과 관련하여 마음에 내재해 있는 성 혹은 덕이며 다산에게 '용'은 평상의 도리가 아니며 오래도록 노력하는 주체의 끈질긴 실천 의지라고 알려주셨습니다. 이때 주자에게 용이 지칭하는 것이 무엇인가요? '이(理)의 적용' 일까요 아니면 '중용에서의 용'으로 봐야할까요? 6. 교과교육론 - 하이트의 도덕심리학 교재 147에 따르면 '타인에게 피해를 가하지 않고 공정하게 대우하는 것'만을 도덕성의 영역으로 분류하는 튜리엘의 관점을 비판하였다.'는 대목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교재나 강의 자료, 강의에 튜리엘이 도덕성 영역을 분류하는 기준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았는데 튜리엘이 '타인에게 피해를 가하지 않고 공정하게 대우하는 것'을 도덕성 영역 분류 기준으로 삼은 것인가요? 7. 교과교육론 - 하르트숀과 메이의 상황특수성의 교리 강의에서 하리트손과 메이의 상황특수성의 교리를 설명해주시며 아리스토텔레스와 비교해주셨습니다. 아리스토에게 무절제한 사람은 합리적 선택의 결과로 무절제한 행동을 했기에 거짓말하는 사람은 자신의 행동을 비난하지도, 정직을 높이 평가하지도 않는다고 해주셨습니다. 그렇기에 상황특수성의 교리에서 '속이는 사람도 속이지 않는 사람만큼 또는 그 이상으로 속이는 데 대해 도덕적 비난을 한다.'는 의견과 반대된다고 알려주셨습니다. / 그런데 하르트숀과 메이의 실험에서 거짓말하는 사람을 무절제한 사람이 아닌, '자제력 없는 사람'으로 볼 수 있는 것 아닌가요? 그렇다면 자제력 없는 사람은 무절제한 행동이 합리적 선택의 결과물이 아니기에 자신의 행동을 비난하며 정직을 높이 평가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8. 교과교육론 - 인격교육론 교재P212, 인격교육론에 대한 비판으로 '인격교육론자들은 교육자들이 후속 세대에게 전수해야 할 전통적인 도덕적 가치가 있음을 주장하는데 이러한 입장은 이미 만들어진 진리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해야 한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비판은 리코나에게 제기될 수 있는 비판은 아니라고 하셨는데 라이언에게도 적용 불가능한 비판인가요? * 항상 좋은 강의 감사합니다 ! 질문이 많아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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