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강의질문] 질문드립니다
- 작성자
- 이정빈
- 등록일
- 2025년 01월 17일 14시 09분
- 조회수
-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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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교수님 질문드립니다
1.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하는 사추덕은 최고덕, 즉 신에 대한 완전한 사랑을 본질로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사추덕 또한 신의 은총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덕이라고 말하나요?
1-1.신의 은총-최고덕 소유-선한 의지 소유-우월한 이성으로의 전환-진리 인식 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교재 122p 원문을 보면 "사추덕 하나하나가 사실은 의지의 발호이며 선한 의지를 중시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네가지 덕들이 갖춰져 있다"고 적힌 것의 의미는 <신의 은총을 통해 최고덕을 소유하는데, 그와 더불어 사추덕을 얻으므로 선한 의지를 소유한 사람은 네가지 덕을 갖추고 있다>고 말하는 게 맞을까요?
1-2. 향주삼덕은 신의 은총의 산물이라고 생각되는데, 아퀴나스처럼 신의 은총을 통해 성취하되 실천해나가야 하는 덕이 맞나요?
2. 스토아학파와 관련한 질문입니다. 스토아학파의 쾌락과 같은 정념에 대한 생각이 헷갈려서 찾아보면서 다음과 같이 정리해보았습니다. 알맞게 정리한 것인지 살펴봐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자연법에 의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도덕적으로 무관한) 어떠한 사건에 대해 비합리적인 판단을 하여 그것으로부터 어떠한 정념이 발생한다. 이러한 정념은 세계에 대해 올바르게 인식하지 못한 데서 비롯한 타락의 상태이며, 비이성적인 것이다. 정념은 그 자체로 선하거나 악한 것은 아니지만, 선하고 행복한 삶을 실현하는 것을 방해한다는 측면에서 악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스토아학파는 이러한 정념을 제거하여 부동심의 상태에 이를 것을 주장하였다.
3. 아리스토텔레스 '탁월하게 일어난 행위'와 '탁월성에 따라 일어난 행위'와 관련한 질문입니다. 교재 53p에는 탁월성에 따라 일어난 행위이기 위해서는 1 알면서 행위해야 하고 2 합리적 선택에 의거해서 행위하되 그 행위 자체 때문에 선택해야 하며 3 확고하고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상태에서 행위해야 한다. 라고 조건이 나와있습니다.
제가 애링턴 서양윤리학사를 보면서 표현이 조금 달라 헷갈렸던 지점들이 있어서 질문드립니다.
책 132p에
<그러나 진정으로 절제 있는 사람은 절제 있는 행위를 할 뿐만 아니라 2심사숙고하여 그렇게 행위하는 것이 바로 중용이기 때문에, 중용을 선택하고 그것에 따라 행위한다. 그러한 사람은 항상 그런 선택을 내리도록 이끄는 - 1그것이 중용에 따르는 것이라는 점을 알기 때문에 - 변화하지 않는 본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그렇게 행위하며 또한 3그렇게 함으로써 쾌락을 얻는다.>
번호는 제가 앞서 교재의 문장에 붙인 번호와 동일한 의미라고 생각되는 부분에 붙인 것입니다. 제가 알맞게 연결지은 것이 맞을까요?
3-1. 특히 궁금했던 점은 교재의 '알면서 행위해야 하며'의 의미가 서양윤리학사에 나와있는 중용에 따르는 행위임을 알고 행위해야 한다는 것인지, 아니면 단지 무의식적인 행위여서는 안 되고 의식적으로 행위해야 한다는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3-2. 또한 서양윤리학사에서 '행위를 함으로써 쾌락을 얻는다'는 것이 고통이나 불쾌함을 겪지 않고 올바른 정신을 가지고 행하는 것과 연결되는 맥락에서 나와있었습니다. 그래서 교재의 '확고하고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상태에서 행위해야 한다'와 '쾌락을 얻는다'가 동일한 맥락이라고 판단하였는데 이것도 알맞은 판단일까요?
4. 아퀴나스 관련 질문입니다. 자연적 성향으로부터 자연법이 도출된다는 것이 사실에서 당위를 이끌어낸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보통 이를 한계점으로 말하다 보니 이해가 잘 안 되어서요. 아퀴나스의 생각은 <신의 영원법이 존재자들의 존재 이전에 이미 질서 지워진 섭리 및 법칙이며 모든 존재자들이 신의 영원법을 원인으로 하여 생겨나는 것이므로 자연적 성향 자체가 질서, 규칙으로서의 신의 영원법이 인간의 본성에 내재된 것이므로 당위(자연법)와 일치하고 이를 받아들일 수 있다.> 이렇게 보면 되는 것일까요?
5. 아우구스티누스, 아퀴나스 질문인데요. 악에 대한 질문입니다. 먼저 이전에 다른 분에게 답해주신 답변을 보았습니다. "도덕적 악의 근원은 불완전한 피조물인 인간의 왜곡된, 혹은 타락한 자유의지이다. 선한 의지의 결핍이 도덕적 악의 근원이다. 도덕적 악은 선의 결핍현상이다."
저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주장을 '인간이 완전한 실재로서의 신이 아닌 열등한 존재를 사랑하는 나쁜 사랑을 갖고, 이것이 의지를 추동하여 악한 의지를 갖게 되어 도덕적 악을 행한다'라고 사랑으로부터 행위까지의 일련의 과정(악에 대해)을 정리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이때 악은 선의 결핍이므로 <나쁜 사랑과 악한 의지> 또한 적극적인 실재가 아닌 <좋은 사랑의 결핍, 그리고 좋은 사랑의 결핍으로 인한 선한 의지의 결핍>이라고 생각하면 될까요?
5-1. 아퀴나스도 악은 적극적인 실재가 아닌 선의 결핍이라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주장을 계승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아퀴나스의 도덕적 악으로의 흐름을 보면 '도덕적 악(악한 행위)은 악한 의지로부터 나오고 이는 이성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가 될 텐데, 이때의 악한 의지 또한 <이성의 명령을 따르는 선한 의지의 결핍>이라고 보면 되는 것인가요?
5-2. 마지막으로 2015년 게시글을 보면 '13년 기출 21번 문제 ㄱ에서 악은 적극적인 실재로서 자유의지의 결과이다'에 관한 질문에 대해 <도덕적 악의 원인은 선한 의지의 결핍으로서, 모든 형태의 도덕적 악은 자유의지의 잘못된 사용의 산물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선택지 ㄱ.에서 잘못된 부분은 ‘적극적인 실재’입니다.>라고 답해주셨습니다.
악은 선의 결핍이라면 자유의지의 결과가 아닐 것도 같으면서도, 결핍으로 인한 것이더라도 인간이 선한 의지와 악한 의지를 갖는다면 악은 자유의지의 결과인 것도 같아서 명확한 답을 얻고자 질문드립니다.
질문을 각각 게시글로 올리는 것보다 모아서 올리는 게 나을 것 같아서 합치다보니 질문이 매우 길어졌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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