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강의질문] 아리스토텔레스 자제력 없음 관련 질문입니다.
- 작성자
- 김병찬
- 등록일
- 2025년 01월 19일 18시 26분
- 조회수
-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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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감사합니다. 질문하신 순서대로 답변드리겠습니다.
분노에 대한 자제력 없음은 분노라는 감정 떄문에 생겨나는 자제력 없음이고, 성급함에 의한 자제력 없음은 성급함이라는 마음의 내적 성향 때문에 생겨나는 자제력 없음입니다. 따라서 “'분노에 대한 자제력 없음'과 '성급함에 의한 자제력 없음'은 공통적으로 감정(분노, 성급함)에 의해 이성의 명령을 충분히 듣지(또는 숙고하지) 못한 것입니다.”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1. 덕 있는 사람은 자신이 처한 상황이 불의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고, 그러한 상황에서 이성이 알려주는 가장 마땅한 행위를 하는 사람입니다. 반면에 분노에 져서 자제력 없는 행위를 하는 사람은 자신이 처한 상황이 불의한 상황이라는 이성의 판단은 듣지만, 분노 때문에 가장 마땅한 행위에 대한 이성의 판단을 제대로 듣지 않고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2. 자제력 없는 사람은 무절제한 행위가 잘못된 행동임을 아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옳은 행위가 무엇인지 합리적으로 선택하는 사람 혹은 옳은 행위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3.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욕망 때문에 자제력 없는 행동을 하는 사람은 그가 욕망에 휩싸이기 이전에는 올바른 행위가 무엇인지 알고 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욕망에 휩싸이게 되면, 그의 정신은 욕망 때문에 아무런 지식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와 동일한 상태가 되고, 그러한 상태에서 잘못된 행동을 하게 됩니다. 물론 올바른 행위에 대한 앎이 그의 정신에서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 [박현우 회원님의 글] ▒▒▒▒▒▒
안녕하세요, 아리스토텔레스 '자제력 없음과 무절제의 차이' - 76p에서 질문이 있습니다.
무절제한 사람은 (잘못되었지만) 합리적 선택에 따라 행위하기에 그것이 잘못됨을 모르는 사람이며,
자제력 없는 사람은 합리적 선택에 따른 행위가 무엇인지는 알지만 감정에 져서 실제적 행위로 나아가지 못한 사람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자제력 없음의 종류 중, '분노에 대한 자제력 없음'과 '성급함에 의한 자제력 없음'은 공통적으로 감정(분노, 성급함)에 의해 이성의 명령을 충분히 듣지(또는 숙고하지) 못한 것입니다.
다음과 같은 예시에서 숙고와 관련하여 의문이 들었습니다.
가령, 마땅히 화내야 할 상황에 화를 내는 것은 실천적 지혜를 지닌 이성이 명령하는 바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감정이 격해져서, 조급하거나 격렬하게 화를 낸 것은 중용에 비해 지나친 감정의 표출의 측면에서 자제력 없음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기개적 부분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전자의 자제력 없음, 그리고 성급하게 나타났다는 점에서 후자의 자제력 없음으로 연결될 수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1. 이런 예시에서 '이성의 명령을 듣긴 하지만'의 측면은 '마땅히 화를 내는 것'으로 나타나고, '충분히 듣지 못한 것'은 실천적 지혜를 지닌 이성이 명령하는 '중용의 정도를 지키지 못한 것'인가요?
그리고 무절제한 행위를 하는 '자제력 없는' 사람에 있어서,
2. '합리적 선택에 따른 옳은 행위를 아는' 사람뿐만 아니라, '옳은 행위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지금 하는 행위가 잘못된 것을 알긴 아는' 사람도 자제력 없음에 해당한다고 봐도 될까요?
마지막으로, '분노에 대한 자제력 없음'보다 '욕망에 대한 자제력 없음'이 창피한 이유는 전자가 이성이 어느 정도 개입된 반면에 후자는 이성의 통제를 완전히 벗어나 욕망에 따르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3. 이때, '욕망에 대한 자제력 없음'은 이성의 통제를 완전히 벗어났다는 점에서 실천적 지혜를 지닌 이성의 명령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조차 없을 것이라고 이해했습니다. 그렇다면 '자제력 없음'보다는 '무절제'로 보는 것이 적절하지 않나?라는 궁금증이 들었습니다. 이성의 개입이 없다는 것이 곧 옳은 행위가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을 의미하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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