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강의질문] 칸트
- 작성자
- 고하늘
- 등록일
- 2025년 02월 07일 21시 43분
- 조회수
-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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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칸트의 법칙의 표상과 관련하여 교수님께서 질문게시판 답변으로‘법칙의 표상은 법칙의 개념’이라고 설명해주신 것을 봤습니다.
형이상학 정초 P134에 [그래서 예상되는 결과가 아니라 법칙의 표상이 의지의 동인인 한에서, 두말할 것도 없이 오로지 이성적 존재자에게서만 생기는, 이 법칙의 표상 자체만이 우리가 윤리적이라고 부르는 그러한 탁월한 선을 이룰 수 있다. 탁월한 선은, 법칙의 표상에 따라 행위하는 인격 자체 안에 이미 현전하는 것으로, 비로소 그 행위 결과로부터 기대될 필요가 없다.]는 대목이 나오는데
법칙의 표상과 법칙에 대한 존경심은 다른 개념이지만 해당 원문에서‘예상되는 결과가 아니라 법칙의 표상이 의지의 동인’이라고 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법칙에 대한 존경심이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닌지 의문이 생깁니다. (의지의 동인은 법칙에 대한 존경심이라고 생각해서 해당 내용에서 왜 법칙에 대한 존경심이 아닌 법칙의 표상이 의지의 동인인지 의문이 생깁니다.)
2. [‘의무이기 때문에’하는 행위의 도덕적 가치는 그 행위를 통해 달성하려는 의도에서가 아니라, 그 행위를 준수하려는 준칙에서 나온다. 따라서 그 행위의 대상이 실현되는지에 좌우되지 않고, 그 행위를 할 때 욕구 능력의 모든 대상을 무시하면서 준수하는 ‘하려고 한다’의 원칙에 따른다.]는 지문이 있는데 행위의 도덕적 가치를 결정하는 궁극적 근원은 도덕 법칙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행위의 도덕적 가치는‘그 행위를 준수하려는 준칙'에서 나오는 것인지 의문이 생깁니다. 이때의 준칙이 정언명령의 심사를 통과한 준칙이더라도 준칙보다는 도덕법칙이 들어가야 하는 게 아닌지 의문이 생깁니다.
< 정약용 >
1. 교수님께서 다른 질문게시판 답변으로 ‘성리학에서는 인욕을 도덕적으로 악한 감정으로 정의하는데, 정약용 또한 원칙으로 인욕을 이와 같은 의미로 사용합니다.’고 해주신 걸 봤습니다. 그런데 한국사상과 마음의 윤리학 P283에 [인욕은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하는 기호를 추동하는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고 나와서 의문이 생깁니다. 인욕을 악한 감정으로 정의하는데 어째서 긍정하는 것일까요?
2. 정약용의 수양법을 미발시 '중' 이발시 '화'라고 이해해도 무방할까요?
< 노자 >
1. 수덕(修德)은 수도(修道)를 위한 외부적인 조건을 창조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노자는 "도를 잃은 뒤에 덕이요, 덕을 잃은 뒤에 인이요"라고 주장한 것인가요?
2. 교재 P515 원문에 있는 ['네'와 더불어 '응'이 서로 얼마나 차이가 나는가?]를 어떻게 이해해야 좋을까요?
< 근본불교 >
1. 명색은 명(사온)과 색(색온)이 결합한 것이라고 알고 있는데 명색이 어째서 6경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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