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팝업레이어 알림

뒤로

강의내용질문

[1~2월 강의질문]  질문 드립니다

작성자
김병찬
등록일
2025년 02월 10일 20시 13분
조회수
106
첨부파일
질문 감사합니다. 질문하신 순서대로 답변드리겠습니다. 1. “즐거움은 행복한 인생의 시작이자 끝이다.”는 즐거움, 즉 쾌락이 인간의 최고선인 행복이라는 주장, 행복한 삶의 본질은 쾌락이라는 주장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일 뿐입니다. 2. 신에 대한 완전한 사랑이라는 최고의 덕을 소유한 사람만이 진정으로 신을 사랑할 수 있고, 최고의 덕은 신의 은총의 산물이기 때문에, 최고의 덕에 따른 신에 대한 사랑은 신의 활동의 결과물이지 인간의 노력의 결과물이 아닙니다. 3. 스피노자의 논리를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모든 양태의 현행적 본질 혹은 본성(실제적인 본질 혹은 본성)은 코나투스이므로, 인간의 현실적 본질은 코나투스이다. 그런데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다. 따라서 이성에 따라 자신의 존재를 보존하는 것이 인간에게 있어서는 자신의 본성의 필연성에 따라 존재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적합한 인식을 갖는 것이 이성의 기능이기 때문에, 이성적 인식에 따라 자신의 존재를 보존하는 것이 인간에게 있어서는 자신의 본성의 필연성에 따라 존재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자유란 자신의 본성의 필연성에 의해서만 존재하고, 자기 자신에 의해서만 행동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오직 이성적 인식에 따라 자신의 존재를 보존하고 행동할 때에만 자유로울 수 있으며, 특히 제3종의 인식을 소유함으로써 완전한 자유를 향유한다. 4. 강의 시간에 말씀드렸듯이, 질문자께서는 개인의 영혼의 덕과 국가의 덕의 관계를 혼동하고 있습니다. 플라톤에 의하면, 하나의 국가는 개인에게 있어서는 하나의 영혼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통치자 계층은 개인의 영혼의 이성적인 부분에 해당하고, 보조자 계층을 기개적인 부분에 해당하며, 생산자 계층을 욕구하는 부분에 해당합니다. 이 점을 고려한 후 질문을 다시 한번 숙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 [윤지예 회원님의 글] ▒▒▒▒▒▒ 안녕하세요 교수님! 에피쿠로스, 아우구스티누스, 스피노자, 플라톤에 관해 질문 남깁니다 1. 에피쿠로스 관련 “즐거움은 행복한 인생의 시작이자 끝이다” 라는 에피쿠로스의 입장에서, 즐거움은 쾌락과 관련한 것이고 에피쿠로스는 쾌락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한다고 하기 때문에 즐거움이 행복과 연관되는 것은 이해가 되었습니다. 근데 왜 즐거움이 행복한 인생의 끝이라고 하는 건가요? 여기서 말하는 ‘즐거움은 행복한 인생의 끝‘의 의미가 무엇인가요? 2. 아우구스티누스 관련 신에 대한 완전한 사랑, 즉 최고의 덕이 인간의 노력의 산물이 아니라 신의 은총의 산물이라고 하는데, 그 이유를 잘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왜 신에 대한 완전한 사랑이 신의 은총의 산물인가요? 그리고 사랑은 소유하고 있지 못한 대상을 향한 욕구로 정의되는데, 이로부터 신에 대한 완전한 사랑을 정의하면 신을 소유하고 있지 않은데 욕구한다는 말이 되어야 해서 신에 대한 완전한 사랑이 신의 은총과는 또 별개로 느껴집니다.신에 대한 ‘완전한’ 사랑이 신에 대한 사랑과는 다른 것일까요? 3. 스피노자 관련 (1) 스피노자에 따르면, 자유란 자신의 본성의 필연성에 의해서만 존재하고, 자기 자신에 의해서만 행동하도록 결정되는 것입니다. 신은 오직 자신의 본성의 필연성에 따라서만 존재하고 활동하기 때문에 이러한 점에서 신만이 완전히 자유로운 존재입니다. 근데 교재의 설명에, 인간이 신의 본성의 필연성에 대해 인식하면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쓰여져 있습니다. 인간이 자유로울 수 있다는 뜻은 인간이 자신의 본성의 필연성에 의해서만 존재하고 활동한다는 것인데, 이때의 ‘자신의 본성의 필연성’이 신의 본성의 필연성인 자연의 법칙과 같은 것을 의미하는 건가요? 그리고 이러한 자신의 본성의 필연성을 인식한 인간은 이에 의해서만 행동하기에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요? (2) 스피노자 관련 개념에서 ‘현행적 본질’이라는 말이 자주 언급되는데, 사물의 현행적 본질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요? 그냥 사물의 본질을 말하는 것인가요? 4. 플라톤 관련 플라톤에게 있어서 덕은 사주덕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성적인 부분이 보편적인 도덕적 진리를 파악하고 인간에게 좋은 것이 무엇인지 헤아려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을 때 ‘지혜’의 덕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말해도 되는 거겠죠? 덕이 영혼의 어떠한 부분이 그 기능을 탁월하게 수행할 때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이 맞을까요?) 이어서 써보자면, 그리고 기개적인 부분과 지혜가 결합하여 형성된 혼합된 덕을 ‘용기’라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기개적인 부분과 욕구하는 부분이 이성의 요구에 따라 기개와 욕구를 스스로 잘 조절할 때 ‘절제’의 덕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 전제가 맞다면 용기와 절제의 덕은 지혜의 덕이 있어야 가능한 것임으로 이해가 됩니다. (지혜의 덕이 있어야 용기와 절제의 덕이 있다고 말하는 게 맞을까요?) 만약 이게 맞다면, 용기의 덕을 가진 자는 지혜가 무조건 있다는 것이고 절제의 덕을 가진 생산자 또헌 지혜가 있다는 것으로 결론이 나는 것 같습니다. 제 논리가 어디서 잘못되었을까요..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꽤 많아 … 질문이 이렇게너 많은 점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ㅜㅜ

본문

댓글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