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강의질문] 하이데거
- 작성자
- 김병찬
- 등록일
- 2026년 02월 11일 20시 16분
- 조회수
- 16
-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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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감사합니다. 질문하신 순서대로 답변드리겠습니다.
1. 현존재가 불안해 하는 대상인 ‘세계-내-존재 그 자체로서의 현존재’란 무한한 자유와 가능성을 가지고 스스로 자신의 삶을 기획하고 창조해 가며 책임지는 본래적인 현존재입니다.
2. 불안의 이유는 피투적 세계-내-존재 가능성 때문입니다. 즉, 현존재는 세계에 아무런 이유도 없이 내던져진 후(‘피투적’의 의미), 스스로 자신의 삶을 창조하고 그것에 대해 무한히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세계-내-존재 가능성’의 의미) 불안해 합니다.
3. ‘실존가능성’이란 자유로운 선택을 통해 기획할 수 있는 나의 모든 삶의 방식을 의미합니다. 죽음의 가능성은 이 파편화된 삶의 방식들에 '순위'를 매겨주는 기준점이 됩니다. 죽음의 가능성 앞에서 부질없는 것들은 뒤로 밀려나고, 나에게 가장 본래적이고 중요한 것들은 최우선 순위로 떠오르게 됩니다. 이로써 나는 나의 존재 전체를 관통하는 질서와 통일성을 갖춘 본래적 삶을 영위하게 됩니다.
▒▒▒▒▒▒ [김지선 회원님의 글] ▒▒▒▒▒▒
하이데거에 관한 다른 분들의 질문과 교수님의 답변을 읽고도 정리가 잘 안되는 부분이 있어 질문드립니다.
1. 수업 시간에 “현존재의 불안의 대상은 ’세계-내-존재 그 자체’로서의 현존재이다”라는 부분에 대해 나의 삶 자체를 불안해 하는 것이라고 설명해주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다른 답변을 읽어보고 ‘세계-내-존재 그 자체로서의 현존재’는 본래적 존재로서의 현존재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러면 현존재가 불안해하는 것(불안의 대상)은 ‘나의 삶은 평균적 일상성 속에서 타인의 영향에 따라 비본래적으로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고유한 실존 가능성을 실현해나가면서, 즉 본래적으로 살아가는 삶이라는 것’ 자체라고 저 문장을 해석하면 될까요?
2. 그리고 ”불안의 이유는 피투적 세계-내-존재 가능성“이라는 부분은 ‘현존재인 인간은 고유한 실존 가능성을 지닌 존재이기에 세계 속에서 자신의 가능성을 정립하고 실현하며 모든 책임을 인수해야 한다는 사실’이라고 이해하면 될까요? 본래적 실존으로서 살아가는 것이 현존재인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어쩔 수 없이, 필연적으로 따라야하는 의무처럼 느껴지는데 그렇게 이해해도 괜찮을까요?
3. 교재 289페이지 하단에 ‘죽음의 불안 속에서 개시되는 이러한 죽음의 가능성은 다른 모든 실존가능성들에게 위계와 질서를 부여함으로써 실존의 전체성과 통일성을 가능케 한다.’ 라고 되어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실존가능성, 그리고 전체성과 통일성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요?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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