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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내용질문

[1~2월 강의질문]  아리스토텔레스 질문 드립니다.

작성자
김병찬
등록일
2026년 02월 19일 20시 36분
조회수
28
첨부파일
질문 감사합니다. 질문하신 순서대로 답변드리겠습니다. 1. ‘탁월성이 아닌 감정’이란 ‘부끄러워할 줄 앎(수치)’과 ‘의분(분노)’을 일컫는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엄밀한 의미에서 부끄러워할 줄 앎과 의분은 엄밀한 의미에서 탁월성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본질적으로 품성상태가 아니라 상황에 반응하여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칭찬할 만한 감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리스토텔레스가 품성의 탁월성과 악덕의 목록을 다루는 부분에서 언급한 이유는 부끄러워할 줄 앎과 의분이 ‘부끄러움’과 ‘이웃의 상황을 보고 생겨나는 고통과 즐거움’이라는 감정과 관련한 중용의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부끄러움’과 ‘이웃의 상황을 보고 생겨나는 고통과 즐거움’은 그 자체로 좋거나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부끄러워할 줄 앎’과 ‘의분’은 좋은 것입니다. 반면에 숫기 없음과 파렴치, 시샘과 심술은 지나침과 모자람에 속하는 나쁜 것입니다. 2. 학문적 인식 부분의 탁월성 및 기예는 진리를 인식하는 것과 관련된 탁월성이지 행위를 잘 하는 것과 관련된 탁월성이 아닙니다. 행위를 잘 하는 것과 관련된 탁월성은 품성의 탁월성과 실천적 지혜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사용하는 ‘탁월성’의 구체적인 함의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해당 용어가 놓인 문맥을 면밀히 살펴야 합니다. 문맥에 따라 그것은 품성적 탁월성을 지칭할 수도 있고, 실천적 지혜와 같은 지적 탁월성, 혹은 영혼의 다른 기능적 탁월성을 의미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 [박경은 회원님의 글] ▒▒▒▒▒▒ 1. (교재 p.61) 품성의 탁월성과 악덕의 목록 표에서 "탁월성이 아닌 감정"에 대한 목록들(부끄러움, 이웃의 상황을 보고 생겨나는 고통과 즐거움)에도 중용(부끄러워할 줄 앎, 의분)이 있다고 생각하면 될까요? -> 만약 그렇다면 '본래부터 나쁜 감정과 행위'에는 중용이 없다고 나와있는데, "탁월성이 아닌 감정"은 '본래부터 나쁜 감정과 행위'가 아닌 것으로 이해하면 되는 것일까요? 예를 들어,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은 본래부터 나쁜 감정과 행위가 아니지만, "숫기 없음" 이나 "파렴치"한 감정은 본래부터 나쁜 감정으로 이해하면 되는 것인가요? -> 만약 그렇다면, 여기서 "탁월성이 아닌 감정"은 어떤 감정으로 이해하면 되는지 궁금합니다. 2. (1주차 보충자료 p.27) 자제력 없음과 탁월성에 대한 논의 중 "자제력 없음으로 인해 도덕적 지식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문제는 탁월성(품성의 탁월성과 실천적 지혜)를 갖춤으로써 궁극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라는 문장에서 탁월성이 '품성의 탁월성' 그리고 '실천적 지혜' 두가지를 의미한다고 나와있는데, 왜 실천적 지혜가 아닌 다른 지적인 탁월성은 말하고 있지 않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탁월성'이란 '품성의 탁월성'과 '지적인 탁월성'을 동시에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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