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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내용질문

[1~2월 강의질문]  아우구스티누스, 아퀴나스 관련 질문드립니다.

작성자
김병찬
등록일
2026년 04월 02일 16시 31분
조회수
24
첨부파일
질문 감사합니다. 질문하신 순서대로 답변드리겠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1, 2. 선의 의지, 좋은 사람, 우월한 이성, 덕, 행복, 이 모든 것의 성취는 신의 은총의 산물입니다. 참고로 이러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적인 입장을 아는 것은 우리에게 큰 의미가 없습니다. 선의 의지, 좋은 사람, 우월한 이성, 덕, 행복 등의 성격에 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입장을 각각 숙지하는 것이 시험을 위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3. 아우구스티누스는 덕복일치를 주장합니다. 즉, 최고의 덕인 신에 대한 완전한 사랑의 소유가 행복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라는 것이 아우구스티누스의 입장입니다. 그에 의하면, 인간은 오직 신의 은총을 통해 주어지는 최고의 덕을 소유할 때에만 신과 완전히 하나될 수 있습니다. 신과 완전히 하나가 된다는 것은 곧 지복을 누리는 것이므로, 인간은 신의 은총을 통해 주어지는 최고의 덕을 소유할 때에만, 지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아퀴나스> 4. 지적인 덕에 속하는 사려가 곧 사주덕의 사려입니다. 5. 아퀴나스가 지적인 덕으로 제시한 것은 지혜(Sapientia), 지성적 직관(지성, Intellectus), 지식(Scientia), 기예(Ars), 사려(실천적 지혜, Prudentia)입니다. 라틴어 Intellectus의 영어 표현은 understanding이므로, 지성적 직관을 이해로 번역한 것으로 보입니다. ▒▒▒▒▒▒ [고지웅 회원님의 글] ▒▒▒▒▒▒ 강의 내용 복습 과정에서 궁금한 점이 생겨 질문드립니다. <아우구스티누스> 1. 도덕적 악의 근원에서 ‘신의 은총을 통해 악한 의지가 정화되어 선한의지를 가질 때 인간은 도덕적 존재가 되며 참된 행복을 누린다’고 나와있습니다. 여기서 언급되는 ‘선한 의지’가 신에 대한 인식 파트에서 지혜를 가지기 위해 우선 의지가 신을 향해 전환되어 나타나는 선한 의지와 같은 것을 지칭하는 것이 맞나요? 
→ 맞다면 신을 향해 의지가 전환될 때에도 신에 대한 은총이 요구되는 것인가요? 교수님께서 다른 답변에서 언급하는 자유의지와의 정합성 문제가 인간의 의지의 전환에서도 신의 은총이 요구된다는 점을 말하는 것인지도 궁금합니다. 2. 신에 대한 완전한 사랑은 ‘모든 것을 신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이것이 최고의 덕이고 인간이 신을 향해 모든 의지를 향해도 신의 은총을 받아야만 신과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인가요? 즉 최고의 덕을 소유하기 위해, 소유하고 있을 때에도 신에 대한 은총이 요구되는지 궁금합니다. 
또한 ‘인간의 의지가 신을 향해 전환하고 → 자연이성이 우월한 이성으로 전환되어 → 신의 존재를 인식(신과 하나됨)하는 과정’, ‘인간의 의지가 신을 향해 전환하고 → 신을 사랑하게 되고 → 신을 소유하여 하나(신 소유, 신에 대한 완전한 사랑)되는 과정’의 모든 단계에서 신의 은총이 필요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3. 신에 대한 완전한 사랑은 신을 사랑하고 실제로 소유하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최고덕이 행복의 필요충분조건인 것인지 궁금합니다. <아퀴나스> 4. 교수님의 답변을 통해 도덕적 덕의 사려는 본질적으로 지적인 덕에 속한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지적인 덕으로 제시되는 사려는 4주덕 중 하나인 사려와 동일한 것인가요? 다른 것이라면 지적인 덕의 사려의 의미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5. 교수님의 자료에서는 지적인 덕의 종류로 '지혜, 지성적 직관, 사려'가 제시되어 있는 한편, 서양윤리사상(한국윤리학회)에서는 지적인 덕으로 '이해, 지식, 지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제시된 덕이 다른 건 번역의 차이인 걸까요? 번역의 차이라면 지혜는 지혜, 지성적 직관은 지식, 이해는 사려에 각각 대응하는 건지 궁금합니다. 항상 친절한 답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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