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강의질문] 스피노자와 흄 질문드립니다.
- 작성자
- 김병찬
- 등록일
- 2016년 02월 06일 08시 34분
- 조회수
- 165
-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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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감사합니다. 질문하신 순서대로 답변드립니다.
1. 스피노자 전공 학자들의 최근 번역어를 사용했습니다. 에링턴 저서의 번역자인 김성호 선생이 스피노자의 전문가가 아닌 것은 확실하고, 따라서 스피노자 전공 학자들의 번역어와 김성호 선생의 번역어가 다를 경우 전자의 번역어를 따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2. 예를 들어 적군 장수의 공정한 성품이나 행동은 적군의 사기를 높여 전쟁 상황에서 우리에게 해가 될 수 있습니다. 즉, 그의 성품이나 행동을 나 혹은 우리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해롭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성품이나 행동을 ‘자신(혹은 내가 속한 집단)의 개별적 이익과 무관하게 일반적으로 고려할 때’, 달리 말해서 인류 전체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그것은 분명 인류에게 이익을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 [장서현 회원님의 글] ▒▒▒▒▒▒
1. 스피노자에서, 코나투스가 정신과 관련될 때는 의지이고, 정신과 육체 모두와 관련될 때는 욕구이고, 욕구를 의식적으로 인식할 때 욕망이라고 하셨는데, 에링턴의 책을 보면 번역이 반대로 되어 있어서 어떤 번역을 선택해야 할지 혼란스러워 질문드립니다.
에링턴 교재에는 정신과 육체 모두와 관련된 것이 욕망이고 욕망을 의식하는 것이 욕구라고 되어 있어서, 앞의 설명이 없다면 욕구와 욕망을 완전히 반대로 쓴 것이 되어서 어떤 번역을 따르는 것이 맞는지 궁금하여 질문드려요!
2. 흄이 도덕감을 다른 감정들과 분류하는 기준에서, 두번째 기준이 보편성이고, 인용문에서 적이 우리에게 해롭더라도 적에게 존경을 느낄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그런데 적의 행위나 어떤 성품을 존경한다는 것은 사회적 유용성을 추구하는 것과는 모순되는 것 같아서 이점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지 궁금하여 질문 드립니다.! 적은 사회 전체의 유용성을 해칠 수 있는데, 그러한 대상에게 도덕감을 느끼는 것이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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