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강의질문] 칼 야스퍼스 질문드립니다.
- 작성자
- 김병찬
- 등록일
- 2026년 06월 18일 22시 49분
- 조회수
-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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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감사합니다. 질문하신 순서대로 답변드리겠습니다.
1. 야스퍼스에 의하면, 죽음, 죄책, 고통의 한계상황을 한계상황으로 수용함으로써 현존재로서의 자신의 삶의 무의미를 깨닫는 것은 실존이 되는 첫 번째 단계입니다. 이 단계를 거쳐 본래적 실존이 되기 위해서는 두 종류의 사귐이 필요합니다. 하나는 다른 실존과의 사귐이고, 다른 하나는 초월자와의 사귐입니다. 따라서 다른 실존과의 사귐을 통해 이루어지는 실존을 위한 사랑의 투쟁은 현존재가 실존이 되는 하나의 계기가 됩니다.
2, 3. ‘실존 상호간의 근원을 찾고자 실존과의 사귐’에서 실존은 완전히 참된 자기를 의미하는 실존이 아니라 현존재의 한계를 직시하고 본래적 실존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가능적 실존입니다.
4. 초월자는 기독교의 신입니다. 실존과의 사랑의 투쟁을 통해서는 완전한 의미의 본래적 실존에 이르지 못합니다. 궁극적으로 초월자와의 사귐을 통해서만 개인은 본래적 실존이 됩니다.
▒▒▒▒▒▒ [박승환 회원님의 글] ▒▒▒▒▒▒
야스퍼스의 한계상황에 대해서 질문드립니다.
1. 4가지 한계상황중에서 죽음,죄책,고통의 한계상황을 직면하고 받아들임으로써 실존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를 얻는건 알겠는데 '본래적 실존에 이를 수 있는 계기는 이와 같은 실존을 위한 사랑의 투쟁에서 마련된다'는 글에서 죽음, 죄책, 고통의 한계상황을 통해 얻는 계기와 사랑의 투쟁을 통해서 얻는 계기는 다른건가요?
2. 사랑의 투쟁은 실존 상호간의 근원을 찾고자 실존과의 사귐에 의해서만 가능한 투쟁이라는데 그럼 실존끼리만 가능한건가요?
3. 만약 실존끼리 가능하다면 사랑의 투쟁은 실존끼리 가능한데 어떻게 실존에 이를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건가요? 이미 실존인데
4. 마지막으로 실존은 초월자와의 사귐을 통해 실현된다는데 초월자는 '신'의 개념일가요? 여기서의 실존과 사랑의 투쟁에서 마련된다는 본래적 실존과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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