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강의질문] 키르케고르 질문드립니다
- 작성자
- 서예림
- 등록일
- 2026년 07월 17일 08시 34분
- 조회수
- 28
- 첨부파일
-
1) 인간의 자기됨에서 자기 자신과 관계하는 관계란 결국엔 인간은 유한한 육체(동물)와 무한한 정신(신적 요소)이 섞여 있는 모순적인 존재임. 이 모순을 외면하지 않고, "이 둘을 어떻게 조화시켜 나갈 것인가"를 끊임없이 주체적으로 고민하고 조율하는 태도를 자기 자신과 관계하는 관계라고 보고 내 힘만으론 이 조율이 안 되니까, 결국 신을 의지하고 신 앞에 단독자로 바로 설 때 참된 자기가 완성된다고 볼 수 있나요?
2) 불안을 왜 자유의 현기증이라고 부르나요? 현기증이라는 단어랑 연결이 잘 안되는 느낌입니다.
3) 키르케고르는 종교적 실존 단계에서 보편적 윤리에 대한 목적론적 정지를 이야기하는데 여기서 목적은 어떤 목적을 이야기하는건가요?
4) 신 앞에 선 단독자 개념이 본래적 실존이 되는 이유가 모두가 예스(Yes)라고 할 때 분위기에 휩쓸려 나도 모르게 예스라고 답하거나, 비도덕적인 관행을 보면서도 "남들도 다 묵인하니까" 혹은 “ 사회가 원래 이렇니까" 라며 내면의 양심을 외면하고 대중 뒤로 숨어버리는 상황임. 그런데 대중의 눈치와 세상적 핑계가 완전히 차단된 신과의 1대 1 관계(단독자) 속에서만, 인간은 온전히 자신의 자유 의지로 삶을 선택하고 그 결과에 책임을 지는 주체적 결단을 내릴 수 있음 . 그래서 이 상태를 본래적 실존이라고 함. 이렇게 이해해도 괜찮을까요?
<하이데거>
염려(마음씀)의 의미는 각주에 나와있는 것처럼 자신의 본래적이고 고유한 존재가능성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뇌하며 그것을 구현하려고 한다는 것으로 이해해도 괜찮을까요?
본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