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강의질문] 질문드립니다.
- 작성자
- 신미경
- 등록일
- 2016년 02월 29일 19시 34분
- 조회수
- 121
- 첨부파일
-
답변 감사드립니다. 선생님 답변에서 궁금한 것도 질문드려요 ㅜㅜ
1.답변내용) 비자연적이란 인간의 자연적 본성에 바탕을 두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주로 사회적 관계에서 후천적으로 갖게 되는 다양한 욕구들(재산 증식에 대한 과도한 욕구, 타인에게 좋은 사회적 평판을 얻고자 하는 욕구 등)을 비자연적 욕구라 합니다.
에피쿠로스의 저작에 동적 쾌락을 자연적 욕구의 충족에서 오는 쾌락이라는 단정적 정의는 나오지 않습니다. 단, 동적 쾌락이 육체적 결핍에서 발생하는 고통의 제거를 통해 얻게 되는 쾌락이라는 점을 고려해 볼 때, 그것은 자연적 욕구의 충족의 산물이라 추론할 수 있겠습니다. 정적 쾌락은 인생의 궁극 목적인 참다운 쾌락, 즉 신체에 어떠한 고통도 없고, 정신에 어떠한 불안도 없는 영혼의 평정 상태을 말하는 것입니다.
Q.그렇다면 비자연적 욕구의 충족(재산증식 욕구, 사회적 평판을 얻으려는 욕구)으로 인해 얻어지는
쾌락은 동적 쾌락과 정적 쾌락 그 어느곳에도 들어가지 않나요?
들어가지 않는다면 어디에 더 가깝고 그런게 있나요?
예를 들어 재산을 증식하는 욕구, 좋은 사회적 평판을 얻는 욕구의 충족을 통해 만약 정신에 어떠한 불안도 없는 영혼의 평정상태를 얻었다면 그것은 정적쾌락에도 속할 수 있나요?
반대로 재산을 증식해서 육체의 결핍을 해소했다면 동적 쾌락에도 속하는 유동적인 개념으로 봐도 되나요?
2.답변내용)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서 생성이란 운동, 변화, 즉 가능태에서 현실태로의 이행을 의미하는 용어입니다. 그런데 쾌락은 어떤 종류의 쾌락이든지 간에 우리가 그것을 체험할 때에 그것은 그 자체로 완전한 것입니다.(여기서 ‘완전한’이라는 용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최고선의 조건인 ‘완전성’과는 다른 의미의 용어입니다. 그것은 그 자체로 완결적 혹은 최종적이라는 의미입니다.) 즉, 불완전한 쾌락과 완전한 쾌락이 있고, 불완전한 쾌락이 완전한 쾌락으로 이행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컨대 감각적 쾌락은 감각적 쾌락이고 정신적 쾌락은 정신적 쾌락이지, 감각적 쾌락이 어떤 조건 하에서 정신적 쾌락으로 이행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점에서 모든 종류의 쾌락은 ‘동적’일 수 없습니다.
Q.아리스토텔레스는 쾌락을 완전하고 생성이 아니라고 보았나요?
가능태에서 현실태로의 이행을 조금만 더 쉽게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에피쿠로스는 그럼 쾌락을 그 자체로 완결적, 최종적으로 보았고
(에피쿠로스는 쾌락을 최고선-완전하게 본 것도 맞죠?)
, 아리스토텔레스도
쾌락을 그 자체로 완결적, 최종적으로 본건가요?
(이때는 아텔의 최고선 완전성 개념과는 다른 완전으로)
쾌락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와 에피쿠로스의 입장 차이를 명확히 정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3.덕의 본질을 아우구스티누스는 사랑으로 보았고 플라톤은 지혜로 보았는데,
아우구스티누스가 플라톤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셨습니다.
실재론 부분과 주의주의적 입장인 부분에서 영향을 받은건가요?
어떤 부분에서 영향 받았는지 구체적으로 더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또 플라톤 역시 주의주의적 입장으로 비이성적인 욕구를 기개로서(의지)
제어한다고 하셨는데..
주의주의적 태도는 같지만,
덕의 본질을 4주덕(플라톤) / 신에대한 사랑 으로 본 것이 차이인가요?
아우구스티누스는 의지를 덕의 본질로 보았는데..
플라톤은 그럼 덕의 본질을 4주덕, 그것을 만들어내는 이성의 올바른 인도
즉 의지보다는 이성을 강조했기 때문에 이부분에서 차이를 보인다고 이해해도 되나요?
또 상기설(진리 내면소유)vs조명설 외 또다른 차이점이 두 철학자 사이에
있는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
극단적 회의주의를 가져온다 -)) 인간다운 삶을 살기위해 노력하지않는다
이말은 유용성만 추구하고, 절대적 보편적 진리를 추구하지않아서 그런건가요?
정말로 극단적 회의론자는 어떠한 노력도안하고 살았을까요?
사회적 상대주의에서 보면 관습에 대한 건전한존중도 있는데, 인간다운 삶을 만드는
관습에도 극단적 회의론자는 완전 거부하고 혼자 단일적으로 살아가나요?(은둔)
에피쿠로스처럼 소규모의 지인들과의 사회적 만남도 거부했는지 궁금합니다.
또 극단적 회의주의에서(p.13)
현상독립적인 대상이 존재한다할지라도 감각경험으로 제한되서 인식할수 없다
에서, 현상독립적인 대상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그리고 사회적 상대주의 용어표현은 사회마다 가치있는 도덕 체계가 다르기에
상대주의를 붙인거라고도 이해해도될까요? (받아들이는 것도 사회마다 다름)
아니면 상대주의가 사회적 성향을 띄고
있어서 (사회관습을 받아들일것주장) 붙인거라고 이해하는게 나을까요?
-----------------------------------
p.97 실재성의 결핍의 뜻을 알고 싶습니다.
선의 결핍과 같은 의미일텐데, 신은 완전하고 피조물은 불완전하다는 것도 알겠는데
우리 역시 실재하고 있는 실재성을 갖추고 있지않나요? (피조물이나 실재함)
예시나 쉬운 설명 부탁드립니다 ^^
항상 좋은 강의 감사드립니다.
본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