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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내용질문

[1~2월 강의질문]  원효 질문드립니다(1)

작성자
김병찬
등록일
2026년 08월 21일 08시 41분
조회수
20
첨부파일
질문 감사합니다. 질문하신 순서대로 답변드리겠습니다. 1) 네. 그렇게 이해해도 무방합니다. 2) 심진여문과 심생멸문은 같지도 다르지도 않습니다. 심진여문은 일체의 번뇌, 망상이 없는 마음의 적정한 측면이고, 심생멸문은 생멸하는 마음의 측면이기 때문에 같지 않다고 하는 것이고, 둘은 분리되어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원융회통하기 때문에 다르지 않다고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동전의 비유는 적절하지 않습니다. 3) 문은 마음의 측면을 의미합니다. 본각, 불각, 시각은 마음의 두 측면의 성격과 깨달음의 가능 근거 및 깨달음에 이르는 방식과 관련된 개념입니다. 4) 네. 5) 네. ▒▒▒▒▒▒ [서예림 회원님의 글] ▒▒▒▒▒▒ 1) 모든 상대적인 구분에서 벗어나 있지만 , 일체의 차별성을 포괄하는 무차별의 절대를 일이라고 합니다. 그 이유가 우리가 세상을 볼 때 "너와 나", "선과 악", "깨달음과 번뇌", "있다와 없다"처럼 둘(二) 이상으로 나누어 대립시키는 순간 차별과 다툼(쟁론)이 생깁니다. ‘일(一)’은 이렇게 상대적으로 갈라져 싸우는 모든 분열과 차별을 하나로 융합하고 넘어서 있다는 뜻에서 일이라고 하는건가요? 2) 심진여문(心眞如門): 마음(心)을 변하지 않는 참된 본질(진여)'의 측면(門)에서 바라본 것 ㄴ ex) 동전의 앞면 심생멸문(心生滅門): 마음(心)을 끊임없이 생기고 사라지는 현실의 현상(생멸)'의 측면(門)에서 바라본 것 ㄴ ex) 동전의 뒷면 →원래 하나의 동전인데 동전을 앞면에서 보는지 뒷면에서 보는냐의 차이 → 심진여문과 심생멸문도 각가 그 자체로 일심일뿐, 깨달음 부처의 마음과 미혹된 중생의 마음이 따로 존재(x) 이렇게 이해해도 괜찮을까요? 3) 심진여'문', 심생멸'문'에서 '문‘ 은 관점을 뜻하는 것 맞나요? 즉 하나의 마음(일심)을 바라보는 두 가지 관점, 그리고 마음(일심)을 진여문과 생멸문으로 나누고 나니, 그러면 중생이 어떻게 어두운 번뇌에서 벗어나 진리의 깨달음으로 갈 수 있는가? 라는 깨달음의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서 본가/불각/시각이라는 개념을 사용한것인가요 즉 중생은 본래 깨달은 마음(본각)을 품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무명에 빠져 깨닫지 못하다가(불각), 수행을 통해 비로소 깨달아 가면서(시각) 결국 본래의 깨달음(본각)으로 돌아갑니다 4) 용속위진: 세속(속)을 녹여서(융) 진리(진)로 만든다(위)= 심생멸문이 심진여문을 포섭함 용진위속: 진리(진)를 녹여서(융) 세속(속)으로 만든다(위)= 심진여문이 심생멸문을 포섭함 사람들이 깨달음을 얻고 나면 "나는 깨끗한 진여(진)에 있고, 너희 중생들은 더러운 생멸(속)에 있어"라며 진여(진리)가 생멸(현실)보다 우월하다는 또 다른 관념과 집착에 빠지기 쉬움. 용진위속은 그 깨끗한 진리(진)조차도 녹여서 중생이 사는 현실(속) 속으로 가지고 들어온다는 뜻으로 이해해도 괜찮을까요? 5) 1)별상: 심생멸문의 관점 ⇒ 세상 만물(법)이 겉으로 보기에 서로 다르고 구분되는 개별적인 모습 예: 꽃, 나무, 바람, 등 제각각 다르게 생겼음. 2)통상 : 심진여문의 관점 그 다르게 보이는 온갖 만물(법)이 바탕으로 내려가면 서로 통하고 본질이 완전히 같은 모습 예: 모양은 제각각이지만 모두 '일심(진여)'이라는 하나의 본성으로 이루어져 있음. 3)모든 법(세상의 모든 현상)이 통상으로 융섭된다는 말 우리가 겉모습(생멸문)만 보면 인간, 동물, 번뇌, 깨달음이 다 다르게(별상) 보이지만, 본질(진여문)의 차원으로 들어가면 모두 '일심'이라는 하나의 성품에서 나온 것. 따라서 아무리 겉모습이 다른 온갖 만물(일체의 모든 법)이라도, 그 뿌리인 근본 성품(일심/진여)은 모두 하나로 통하기 때문에, 결국 공통된 하나의 본성(통상) 안으로 전부 다 포함(융섭)된다는 뜻으로 이해해도 괜찮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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