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강의질문] 이황 질문입니다
- 작성자
- 김병찬
- 등록일
- 2016년 04월 13일 12시 33분
- 조회수
- 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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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감사합니다.
“칠정은 전체적인 정인데 비하여 인심은 도심과 대립되는 부분적인 정”이라는 이황의 주장은 인심과 도심은 대립하지만 칠정과 사단은 발출처가 다를 뿐 대립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된 이황의 글을 인용하겠습니다.
“지난번에 보내 주신 견해를 보면 인심(人心)과 도심(道心)은 칠정(七情)과 사단(四端)으로 말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덕홍의 기록을 보면 “인심(人心)은 칠정(七情)이고, 도심(道心)은 사단(四端)이다.”고 합니다. 그것이 다른 이유는 무엇입니까? 인심(人心)은 칠정(七情)이고 도심(道心)은 사단이라는 것은 『중용(中庸) . 서(序)』나 주희설, 그리고 동양(東陽) 허씨(許氏)설 등으로 본다면 두 가지가 칠정(七情)과 사단(四端)이 되는 것은 본래 불가하지 않습니다. 내가 이전에 이굉중에게 답해서 말한 것이 이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명실(名實)을 가지고 자세히 보면 인심(人心)이란 명칭은 이미 도심(道心)과 서로 대립하는 것이어서 자신의 몸에 있어서 이미 개인적인 것에 속합니다. 그래서 ‘개인적인 것’이라고 말한 이상 이미 한쪽에 치우칩니다. 그러나 도심(道心)에 따르면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도심(道心)과 완전히 하나가 되는 것으로 칭할 수는 없습니다. 칠정(七情)에 있어서도 비록 기(氣)에서 발했다고는 하지만 실로 균형있고 공평한 말이며 한 쪽에 치우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악기(樂記)」나『중용(中庸)』,「호학론(好學論)」 에서는 모두 사단(四端)을 그 속에 포함하여 혼륜하게 합하여 말합니다. 그래서 자사가 희노애락(喜怒哀樂)이 미발(未發)한 때를 중(中)이라고 하고, 발하여 모두 절도에 맞는 것을 화(和)라고 하면 되지만, 만약 인심(人心)이 아직 발하지 않은 것을 ‘중(中)’이라 한다고 말하면 안됩니다. 정자(程子)가 말한 바와 같이 그 마음이 움직여서 칠정(七情)이 나온다고 하면 되지만, 마음이 움직여서 인심(人心)이 나온다고 말하면 안됩니다. 만약 저 도심(道心)과 사단(四端)이 비록 인심(人心) . 칠정(七情)의 설과 같지 않더라도 도심(道心)은 심(心)으로 말한 것이어서 시종을 일관하고 유무(有無)에 통하고 있습니다. 사단(四端)은 단서로 말한 것이므로 발현된 곳에 나아가 그 단서를 지시하므로 약간의 차이가 없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평숙에게 답하여 운운한 것입니다. 그러나 잘 보면 또한 그것이 결국은 같게 되는데 문제가 없습니다.”
▒▒▒▒▒▒ [우혜리 회원님의 글] ▒▒▒▒▒▒
질문드립니다^^
교재461페이지에 칠정과 인심을 비교하는 문장에서
"칠정은 전체적인 정인데 비하여 인심은 도심과 대립되는 부분적인 정이라는 점에서 둘 사이에 차이점이 있다."라고 하는데.. 이해가 잘 안갑니다. 인심이 왜 부분적인 정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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